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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덕진 무등일보 경제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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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의 말을 먼저 전해야하는데, 당신을 향한 기대와 갈망으로 축하의 말보다 원망의 마음이 앞선다. 한 사회의 권력층이 백주 대낮에 황당한 굿판을 벌이는 이 때, 21세기에 버젓이 마녀사냥을 자행하는 이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물음이 앞선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제 수하를 내려 보내 언론장악에 나서고, 독립을 주창하며 이전 대통령에게는 맞장까지도 서슴지 않던 수많은 검사님들까지 안면 확 바꿔 대통령의 발이 돼 언론을 만신창이 내는 이 때,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방송은 권력의 손짓아래 사과를 하고 언론은 푸른지붕의 영도아래 먹을 것과 먹지말아야 할 것을 학습해야하는 이 황량한 계절에..
가슴이 울렁거려 생일을 축하할 여유가 없다. 그래도 당신 생일인데…, 아픔은 아픔일 뿐, 축하의 인사를 해야하는데…. 소식을 전하기 위해 협회 홈페이지를 찾았다가 당신도 그 굿판에서 차마 눈 떼지 못하고 있음을 겨우 보았다.
그러나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웅얼거리는 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당신이 협회라는 공인의 이름을 갖는 순간 당신은 저들과는 달라야한다. 텔레토비처럼 서로 입을 맞추고 서로 칭찬하면서 스스로 자기만족에 빠지는 저 푸른지붕의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당신을 비난하는게 아니다. 당신은 우리가 기댈 가장 큰 언덕이자 마지막 보루다. 내가 당신에게 바람이 많은 것은 당신과 사랑하고 싶어서다.
당신의 외침, 절규의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저 광풍에 당신 목소리는 너무 희미하여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듯 하다. 그러나 그래서야 당신을 어찌 당신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협회의 목소리가 저 시골 동네, 방방곡곡에 울려퍼지도록 해달라.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정호승의 ‘서울의 예수’ 중에서)
인간을 향한 시인의 뜨거운 눈물과 아픔이 절절히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무등일보 조덕진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