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김인규 전 이사가 사장 응모를 포기한 배경은 ‘이명박 캠프 방송전략실장’이라는 약점과 여권 내의 견제, 최근 KBS 내의 상황 악화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규 전 이사는“이번에는 KBS 출신이 KBS 사장을 해야한다”는 여론과 함께 오래 전부터 KBS 사장을 강력히 희망해왔고 KBS 내에도 일정한 지지 세력이 있어 유력한 후보로 꼽혀왔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끈질긴 권유로 대선 캠프에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합류했다는 점에서도 ‘낙점’이 확실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방송전략실장 경력, 여권 내 견제, 경찰력 투입으로 낙마
그러나 결국 ‘방송전략실장’이라는 경력이 발목을 잡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근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인규 전 이사가 KBS 안의 여론도 있고 능력 면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 아니냐”면서도 “‘방송전략실장’이라는 타이틀이 없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이사는 여권 내에서도 견제에 부딪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이사는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독대가 가능한 ‘거물’이기 때문에 그가 KBS 사장이 될 경우 여권에서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서울 출신인 김 전 이사가 한나라당 내 주류인 TK나 PK 등에 지역적 기반이 없고 특정 정파와 밀접한 관계가 없어 여권 내 확실한 지지 세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 방송통신위원회 기획조정실장 인사도 이런 여권 내 ‘파워게임’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 전 이사가 추천한 이명구 실장이 중도 낙마의 위기를 맞았던 것은 여권 및 KBS 차기 사장 후보군의 강력한 견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 ‘김 전 이사가 호남 출신이라 전북이 고향인 이 실장을 밀었다’라는 소문도 돌았다.
지난 8일 이사회 때 일부 이사 주도로 이뤄진 KBS 경찰력 난입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력 투입으로 KBS 내 여론이 악화되고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 데다가 국회도 공전되는 상태 등 정치적 부담이 더욱 커진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한나라당 내에서 “또 무리수를 둘 필요가 있냐”는 말이 설득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김 전 이사가 잔여임기를 채우는 이번 사장보다는 차기 사장 쪽으로 언질을 받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권력의 부침을 장담할 수 없는데 1년2개월 후는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응모 마감 하루 전까지 ‘혼전’
어쨌든 김 전 이사의 중도 포기로 KBS 차기 사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18일까지 청와대는 ‘김인규냐 아니냐’를 두고 격론을 벌였으며 19일 현재 대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의 한 관계자는 “김인규씨의 포기로 오히려 남은 임기 동안 악역을 맡아 KBS를 확실하게 ‘칼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논란을 우려해 김 전 이사가 낙마한 만큼 KBS 출신 가운데 정치적 시비를 줄일 수 있는 인물이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대신 부사장으로 정권이 추구하는 KBS의 변화를 이룰 사람을 기용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오르내리는 후보 중에서 강동순 전 방송위원은 확실한 보수주의자라는 점과 여권 내 물밑작업을 많이 해왔다는 점에서 거론되나 ‘친박 계열’에 가깝고 지난 녹취록 파문 등의 전례가 있어 더 큰 정치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병순 KBS비즈니스 사장은 정치권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노조 등이 반대할 명분이 적다는 점에서 떠오르고 있다. 계열사 사장을 맡으며 실적도 남겼고, TK 출신에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경북고 동기동창으로 절친한 사이라 여권에서도 신뢰할 수 있다는 점이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그러나 평소 ‘매몰찬’ 일처리 스타일로 KBS 일부에서 인심을 잃었다는 평이다. “이 사장이 올 경우 1백%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KBS와 정계 안팎에서는 이사를 지낸 K씨 등 공채 출신이 아닌 KBS 출신 원로 인사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어 하루 전까지도 아직 안개 속인 형국이다.
사원행동 “이사회 저지 변함없다”
한편 노조와 사원행동 등 ‘낙하산 사장’을 반대해온 KBS 내 조직들의 향후 입장도 관심거리다. KBS 내에서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에서 “어디까지를 낙하산으로 규정할 것이냐”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승규 노조위원장은 지난 13일 열린 KBS 기자총회 자리에서 “김인규, 강동순씨는 명확한 낙하산이다. 절대 수용할 수 없다”며 “방송을 통해 권력의 뜻을 실현할 사람은 안된다”고 말한 바 있다. 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김인규 선배의 응모 포기 결정은 개인적 결단임과 동시에 노동조합의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의 한 성과물”이라며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낙하산 저지 투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원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김 전 이사의 포기에 대해 “이로써 정치권에 몸을 담갔거나 줄을 댔던 인사는 그 어느 누구도 결코 공영방송 KBS 사장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오는 20일까지로 예정돼 있는 사장후보 접수 절차 자체가 원천무효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