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정연주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읽고 기자들의 개별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KBS 정연주 사장
-그동안 거취 등에 대해 말을 아끼다가 입장을 밝히게 된 이유는.
설마 상식과 합리를 뛰어넘는 일이 일어날까 생각했다. 지난 연말 확대간부회의에서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입장이 변한 것이 없어 따로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사장의 임기보장이 절실하다고 봤다. 이것이 무너지는 상황이어서 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
-이사회에 해임안이 상정됐다. 이사회가 이 안건을 통과시킨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어떤 결정을 하든 이사회 소관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그렇다. 이사회는 사외 인사 11분으로 구성돼있고 회사의 독립적인 의결기구다. 기본적으로 이사회가 KBS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본다. 그것을 흔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변호인단이 이 문제에 대해 법적인 절차를 밟게 된다.
-청와대나 정부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사퇴요구가 있었나.
잘 아시는 대로 작년 연말 대선 이후 저에 대한 사퇴 압박은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직접 구체적 압박이 온 것은 없었다. “사장 퇴출 영순위”라는 등 한나라당 쪽에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김금수 전 이사장을 만난 이야기 등을 간접적으로 들었다. 유재천 이사장이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 말한 적이 있다. 사석에서 정부 여당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만한 분들에게도 이야기해왔다. 민주적인 절차와 제도를 존중해 규제의 틀, 제도적 틀을 바꾸면 된다고 강조했다. 상식적, 합리적으로 공영방송 사장 제도를 변화시켜야지 이를 무리하게 한다면 절차와 제도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신재민 문체부 2차관이 대통령이 KBS 사장 해임권을 갖는다고 한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용퇴를 요구하는 KBS 노조의 요구에 대한 입장은. 해임이 실제 이뤄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노조의 사퇴 주장에도 똑같은 답을 했다. 저와 노조 사이 생각 차이가 있다. 전 정치적 독립성을 위해서 사장 임기가 보장되는 것이 중요한 가치라고 보고 있다. 노조는 저와 견해가 다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의 구절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는 말이다. 나중에 일어날지 모를 일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늘은 원래 예정대로라면 베이징에 있어야 할 날인데.
사실 유감스럽다. 왜냐하면 공식적인 행사도 행사지만 베이징에 KBS 제작진 1백60명이 가있다. 제작진들에게 당부한 이야기가 있다. 나라 안 사정이 어수선해서 국민들 마음이 편치 못하다. 가까운 나라에서 스포츠 축제가 열리니 우리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 얻어서 국민적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 제작진도 최선을 다해달라 당부드렸다. 근무조건도 굉장히 타이트한데 거리가 멀지 않으니 가서 격려하고 싶었다. 오늘 저녁에 제작진 1백60명과 저녁을 함께 하기로 준비돼있다. 그게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방송협회 회장단 자격으로 자크 로케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면담도 예정됐다. 우리나라 문화관광부와 방통위를 합친 성격인 중국 광파전시국 장관의 초청도 있었다. 저와 원래 각별한 사이다. 후진타오 주석이 베푸는 오찬에 전세계 20개 언론사 대표의 한사람으로 참석한다는 것도 통보 받았다. 이번 여러 가지 공식적으로 할 일이 많았는데 출국금지 조처가 갑작스레 내려지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하게 돼서 고생하는 우리 KBS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국제적 외교적인 면에서도 결례가 있지 않았나 싶어 어제 아침 장관에게 이해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보수신문들은 KBS 방송보도가 편파적이고 좌편향이라고 비판한다. 신재민 차관은 정 사장의 “헌재소장이나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냐”는 발언에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맞지않다”고 반박했다.
좌가 우가 됐건 우리 사회가 이제 좀 성숙해졌다면 다양성이 확보돼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 종류 목소리들이 다양하게 담아져야 한다.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우리 제작진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했다. 공영방송은 우리 사회 다양한 견해와 입장을 모두 담아내는 용광로가 돼야 한다. 편향 문제 관련해서는 반문하고 싶다. 그렇게 편파왜곡하고 편적이라면 어떻게 모든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1위가 나오겠는가. 그런 지적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 프로그램 통해서 우리 사회 이념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단박인터뷰’에 조갑제 선생이 출연한 적 있어 칭찬하기도 했다. 아이디어 차원으로 이문열 선생도 했으면 좋겠다고 전달한 적이 있다. 그 사회의 성숙도를 판가름 짓는 것은 얼마만큼 다양성이 보장되고 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비판은 어떤 분들에게는 우리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가 자신의 이념적 잣대와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해 나온 것 아닌가 싶다.
신재민 차관은 말씀을 함부로 하시는 것 같다. 과거 같이 워싱턴 특파원 시절을 보냈다. 그분은 한국일보 특파원이었다. 입장이 어때서 그런 말을 대표로 하시는지 모르지만 방송법 제정 역사 과정을 보자. 통합방송법에서 사장 임명절차를 이사회가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토록 했는지 그 정신을 생각해봐야 한다. 상식적으로 합리적 수준에서 판단할 문제다. 헌재소장,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해임할 수 있는 건가. 그 경우는 탄핵의 절차가 있다. 제 주장이 그거다. 면(免)시킬 수 있는 절차를 만들라는 것이다. 국무위원은 국무총리가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고 면(免)을 제청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KBS 사장도 독립성이 생명이니 임기를 중간에 그만 두게 할 때는 그런 절차와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 불만 없다. 예를 들면 방송위가 방통위로 기구가 바뀌고 규제 틀이 달라지면서 방송위원들이 다 그만두고 신임 방통위원이 선임된 것과 마찬가지다. KBS도 절차와 제도를 바꾸고 사장을 해임시키든 하라는 것이다. 현행 방송법에 면(免)권이 없다는 것이 저희들 판단이다.
이 문제는 어차피 언젠가 법정에서 가려지리라고 본다. 공영방송 독립성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판결이 될 것이다. 만약 해임이 법적 절차적 하자가 있어서 무효라는 판정이 나온다면 KBS 정치적 독립성 담보에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 될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사장을 바꾸면 KBS가 바뀌어지리라 생각하는가.

▲ 이날 기자회견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려 KBS 문제에 대한 관심도를 보여줬다. 사진은 기자회견이 열린 KBS 본관 대회의실 전경.
미래의 일을 지금 말하기 그렇다. 다만 우리 KBS 구성원들의 방송독립에 대한 정신과 열정을 믿는다. 90년 방송민주화를 위해 싸운 역사도 있다. 지난 5년 동안 자율성이 보장된 제작환경 속에서 더 이상 잃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돼있다고 보고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본다. 후배들을 믿는다. 그들이 지켜낼 것이다.
이번 감사원 특별감사 관련해 우려하는 점은 공영방송 미래에 심각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들이 지적 사항에 많다는 것이다. 인력을 구조조정하라든지 여러가지 간섭 조치가 많은데 그걸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회사가 경영상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하지 못하게 돼있다. 노사합의도 필요하다.
또 KBS가 직원이 많다, 방만하다 하는데 그렇지 않다. 5년 재임하면서 느꼈는데 그동안 엄청난 신규 인력 요구가 있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추가 인력이 필요했다. DMB 등 많은 종류의 뉴미디어가 탄생했다. 뉴미디어 쪽에서 필요한 인력수요가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TV 두 채널, 라디오 7개 채널, EBS 송신 등 국가기간 방송으로 기본적 책무가 있다. 그만큼 기본적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순한 숫자 로 인력이 넘친다고 한다. 1971년 동아일보 기자 시절이 생각난다. 당시 김상만 사장께서 고려대 경영연구소에 동아일보 경영 분석을 맡긴 적 있다. 연구소 연구원들이 나와서 경영분석을 하더니 기자의 3분의 1을 줄이라고 했다. 기계적 산술적으로 계산하니까 그렇다. 언론 일은, 방송사 일은 벽돌 찍는 공장과는 다르다. 지식노동이고 정신을 소모하는 직업이다.
정년 퇴직자가 생겨도 그만큼 다 채우지 않고 신규인력을 억제해 채용하고 있다. 인력 자연 감소로 가고 있는데 새로운 인력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프로그램 제작이 과거보다 더 많은 인력을 요구하고 있다. 보도본부 같은 경우 뉴스 시간과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이 늘어났나. 신규인력 증원 요구는 엄청 많으나 줄여왔다. 왜 구조조정 세게 안했느냐고 하면 근로기준법부터 다시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KBS 실정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 정규직이 5천3백명 조금 더 되는데 BBC는 2만 5천명이고 NHK는 1만5천명 수준이다.
이젠 홀가분하게 말할 수 있는데 방만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절감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송중계소 효율화로 상당부분 철수 시키고 있다. 일부 중계소는 통폐합하고 있다. 무리하게 하면 시청자, 청취자로부터 난시청 난청 문제로 엄청난 불만이 들어온다. 그런 노력은 하나도 평가 안하고 숫자만 갖고 이야기하는 건 곤란하다.
-감사원이 지적한 1천1백72억원 누적 사업손실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원은 당기 순손익을 보지 않고 사업손익만 봤다. 둘은 회계상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경영 성과를 표현할 때 당기순손익이란 통계를 쓰는데 왜 사업손익이란 개념을 썼는지 모르겠다. 취임한 2003년은 빼고 왜 이듬해부터 4년만 모아 적자라고 숫자를 맞췄는지 의문이다. 낯간지러운 셈법이다.
-정 사장 또한 참여정부의 낙하산 인사, 코드 인사였기 때문에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사장 임기 보장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2003년에 KBS 사장 공모가 있었다. 저는 이른바 시민사회 추천 몫으로 천거를 받았다. 시민사회와 언론노조에서 세 명 시민후보를 뽑아 사장 공모에 넣었다. 제가 그중 한명으로 이사회에서 투표를 해서 5대 4로, 한 표 차로 됐다. 그 과정을 보면 이해될 것이다.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이나 사실 여기 재임하는 동안 참여정부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미FTA 보도라든가 NAFTA 관련 프로그램, 공공기관 특별법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판이 있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 보도가 참여정부 시절 비판적인 내용이 많았다. 사실 저는 5년 동안 좌우 양쪽에서 다 얻어터졌다. 오른쪽에서는 좌편향이라고 비판하고 왼쪽에서는 공영방송의 기계적 중립주의라고 비판하고 보수화 됐다고도 했다. 양쪽에서 그런 비판 받을 때마다 KBS가 균형을 잡고 있구나 생각했다. 어느 한쪽 목소리가 크다보니 평가가 경도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저는 양쪽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