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나재필 충청투데이 편집부 기자 |
|
| |
MB정부의 ‘불통의 정치’에 맞서 점화시킨 촛불은 소통을 염원하는 횃불로, 안전한 식탁을 위한 국민들의 등불로 시린 밤을 밝혀왔다. 촛불은 불꽃이 아니라 불같은 분노다. 그것이 순정의 저항이든, 배후가 있는 항거든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그 촛불은 희생을 감수한 분노의 외침이다.
그러나 정부는 얼렁뚱땅했다. 미국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만찬을 즐기며 ‘늙은 소’를 가지고 와서는 국민을 설득하는 데 소홀했다. 아니 실패했다. 소통을 말했지만 불통했고, 섬김을 말했지만 어김을 반복했다. 장관 몇 명 바꾸고, 차림표 몇 줄 갈고, 통첩(通牒) 몇 장 뜯어고치는 것이 기껏 생각해낸 ‘쇠고기 정국’의 갈무리다. 안전한 식탁은 둘째치고 ‘말의 성찬’으로 국민의 귀를 막고 입을 유혹한 실정은 벌써 포장육의 토막 난 뼛속으로 사라졌다. 미국산 소는 결코 ‘미치지 않았다’며 솔선수범해 시식한 장관은 끝내 옷을 벗었다. 국회 문을 걸어 잠그고 거리에 나앉았던 정치는 이제야 ‘집으로’ 돌아갔다. 전봇대를 뽑고 불도저로 밀고 대운하를 들먹거리면서 시작한 새 정권은 바람 위의 촛불처럼 수개월간 흔들리다 아직도 폭풍전야의 서슬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다.
언론도 자성해야 한다. 28년 전 상처와 분노로 절룩거리던 광주를 언론은 외면했었다. 아스팔트 몸뚱이를 난도하던 탱크소리,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피맺힌 절규, 그리고 7공수여단의 살상현장을 목도하고도 침묵한 언론들이 있었다. ‘깃발’처럼 쓰러져가는 광주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군사독재자들의 말에 두루뭉수리 묻어갔고 곁다리를 끼고 있었다. 일부에선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보도하며 신군부와 야합했다. 무지몽매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았다. 총을 들고 트럭을 탈취해 광분하는 ‘폭도’들의 모습이 화면 가득, 지면 가득 흘러넘쳤다. 그들은 졸지에 ‘빨갱이’로 몰렸고 우리는 그들이 진짜 ‘빨갱이’인줄 알았다. 그 외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빚’으로 남아 있다. 그 빚은 너무 때늦은 양심이고 오랜 기간 지병처럼 찾아오는 통증이기도 하다. 87년 6월 항쟁 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그 편향적인 잣대는 고쳐지지 않았다. 광우병 보도와 맞물려 보수와 진보신문끼리 시시비비를 가리자며 ‘좌향좌, 우향우’ 논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 정치와 정부를 직필(直筆)로 이끌어야 할 언론은 국민의 눈물을 아는가,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체 하는가, 정녕 의뭉스럽다.
지금이야말로 인디언식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인디언은 사냥감을 쫓다가도 어느 순간 추격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본다. 너무 빨리 달리면 자신의 영혼이 미처 ‘나’를 쫓아오지 못하고 길 위에서 헤맬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부디 정부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조금은 늦을 수 있지만 뒤를 돌아보라. 민심이 쫓아오고 있는지, 만약 민심이 쫓아오지 않는다면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저 성난 촛불이 그저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를 가리는 일회용 컵 속의 촛불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심의 횃불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길 바란다. 촛불은 강제적으로 끌 수 있지만 촛불의 심지(燭心)는 영원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