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라는 새로운 시위문화가 생긴 데는 PD수첩이 한 몫을 했다. ‘미군은 무죄인가’ 편(2002년)은 월드컵 기간 파묻힐 뻔했던 ‘미선 효순양 장갑차 사건’을 다뤄 SOFA(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등을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2005년 황우석 사태는 PD수첩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
PD수첩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가짜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내보냈다. 그러나 국민적 영웅이었던 황 박사를 지지하는 여론과 취재 윤리 위반 논란에 밀려 방송이 일시 폐지되는 수난을 겪었다. 이후 PD수첩의 보도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되살아났다.
주요한 수상경력도 많다. 우리나라 방송에서 고엽제 문제를 최초로 다룬 ‘총성없는 전쟁, 고엽제’ 편(1996년)은 그해 ‘YMCA 올해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사형수들의 절규’(1997년)는 제1회 앰네스티 언론상의 영광을 안았다.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보수신문을 2부에 걸쳐 비판한 ‘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멀었나’ 편(2000년)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PD수첩은 이 방송으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주로 금기시된 주제를 다루다보니 적잖은 송사에 휘말렸고 물리적 위협도 겪었다. 선정성 논란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99년 5월 일어난 방송중단 사태. PD수첩이 ‘이단파문, 이재록 목사’ 편을 방송하자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MBC 주조정실에 난입했다. 직원들이 폭행당하고 방송이 20분간 중단됐다. 이 일은 몇 되지 않는 국내 지상파 방송 중단 사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94년 영생교 문제를 다룬 방송을 취재하는 도중에는 제보자가 취재 다음날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학재단의 로비로 사립학교법이 개정됐다는 의혹을 밝힌 ‘로비에 흔들리는 사립학교’ 편(2001년)이 방송되자 전국 5백21개 사학 재단이 26억원의 손해배상 집단 소송을 걸기도 했다.
선정성 논란에 휘말린 ‘원조교제 10대 알바’ 편(1998년)은 방송위원회의 결정으로 시청자 사과 방송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