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대기업의 방송 진출 제한 기준을 대폭 완화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방통위는 진통끝에 지난달 27일 전체회의에서 IPTV법(인터넷멀티미디어사업법안)시행령의 종합 및 보도편성 채널에 대한 대기업 진입 제한을 현행 공정거래법상 자산규모 3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 기업으로 대폭완화하기로 확정했다. 언론시민단체와 야당 등은 즉각 “정부의 방송장악과 방송의 양극화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자산총액 10조원 기준 모호 방통위 측은 이에 대해 글로벌 미디어 환경시장 조성을 위한 방송 시장 확대와 자본 유입 및 산업 활성화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관련 공청회에서 방통위는 “글로벌 미디어 환경을 고려할 때 대기업이 종합 편성 채널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허용 대기업은 기존 15개에서 41개로 늘어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따르면 CJ, 현대백화점, 이랜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언론단체들은 이로 인해 △방송사의 경영악화 △친 정부, 친 여당 방송 개국 △KBS2TV 분리, MBC 사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이 큰 차이가 없다는 점과 10조원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정거래법 상에도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기업을 대기업으로 보고 있고 지난 4월21일을 기준으로 5조원으로 확대하는 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이보다 훨씬 높은 10조원은 터무니없는 액수라는 주장이다. 산업 논리가 커진 것을 인정하더라도 모호한 기준으로 10조원을 택한 것은 특정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채수현 정책국장은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 등의 보도는 한나라당에 지상파 방송이 정권에 의해 정파적으로 이용될 수 없음을 인식시켰다”며 “이명박 정권은 비협조적인 지상파를 대체할 여론 형성 및 정권홍보용 보도·종합편성이 필요하게 됐다. 그 대상으로 현 정부에 협조적인 대기업을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콘텐츠 육성 논리, 설득력 없어 방통위는 지상파, 지상파 계열 케이블 채널들이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 콘텐츠 시장이 다양화, 활성화 되지 않은 것이 이번 결정의 한 원인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방통위는 기존 지상파 계열 채널이 활성화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종합편성 PP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언론단체들은 “콘텐츠 시장의 성장 둔화는 지상파 독과점 보단, 한정된 광고시장이 원인”이라며 “거대 미디어의 등장은 방송계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이며 여론 독과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업계도 “방통 융합의 핵심은 콘텐츠인데도, 플랫폼 사업자 위주의 정책으로 콘텐츠 산업의 사기를 꺾고 있다”고 했다.
언론계 한 관계자는 “방통위가 오해받을 수 있는 이 시점에 굳이 IPTV 시행령의 세부 안을 결정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며 “향후 방송법 개정 등과 함께 다른 경쟁사업자에 대한 비대칭 규제들을 폭넓게 논의할 수 있을 때 재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이하 언론노조)은 지난달 27일 성명을 발표하고 “방통위의 대기업 기준 완화 결정은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노조는 “전문성은 차치하고 방송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한 줌의 철학도 없었다”면서 “방송을 산업적 논리로 재단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48개 언론·미디어 단체가 참가한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은 6월26일 방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기업 기준 완화는 방송산업 활성화가 아닌, 재벌 방송을 양산해 내 방송 양극화를 초래할 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