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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후 8시쯤 정동 경향신문 사옥 근처 한 식당. 불판에 지글거리며 익는 삼겹살을 안주삼아 경향신문 기자들이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널찍한 식당 방 한 칸을 차지한 기자들은 어림으로 40여명.
입사 1년차 기자에서 논설위원까지 삼삼오오 모여서 최근 촛불문화제 등을 안주로 삼아 왁자지껄했다. 평일인 그날 저녁 그렇게 많은 기자들을 한데 모은 주인공은 고영재(60) 경향신문 사장. 고 사장은 이날 임기 2년의 경향신문 사장을 마쳤다. 이 자리는 고 사장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기자들이 마련한 조촐한 저녁이었다. 사장이 아닌 대선배를 보내는 마지막 심정으로 기자들은 그렇게 모였다.
기자들은 ‘고영재 선배를 사랑하는 경향신문 후배일동’의 이름으로 고 사장에게 감사패와 꽃다발을 전달했다. “오늘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하고픈 큰 선배인 당신께 크나큰 고마움과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는 내용의 감사패를 받은 고 사장은 겸연쩍은지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다음날 정기 주주총회 사회를 봐야 한다며 술잔을 드는 둥 마는 둥 했던 고 사장은 후배들의 강권에 못 이기는 척하며 소주 폭탄주를 돌렸다. 폭탄주가 한 순배 돌면서 마지막 만찬의 분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선배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났다.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고, 눈물로 아쉬움을 달래면서도 한편으로 소주잔을 권하면서 그들은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누군가 걷기 얘기를 꺼내자 감사패 대신 운동화를 사드릴 것을 잘못했다는 말에 좌중은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고 사장은 ‘걷는 사람 고영재’라는 명함을 따로 가지고 다닐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고 사장은 이날 21세기 디지털저널리즘을 얘기하며 비인간화, 거짓말, 신자유주의 경계 등을 주문했다. 재임 기간 사원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주지 못한데 대한 미안함도 일부 표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도처에서 쏟아지는 경향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을 후배들이 이어가기를 바랐다.
1차 술자리가 파장을 보이자 적잖은 후배들이 2차를 제안했다. 머뭇거림도 없이 흔쾌히 승낙한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후배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선배로 남아 2차 술집을 향해 걷는 그의 뒷모습에서 탈세 혐의로 검찰에 출두하던 한 언론사 사주를 향해 ‘힘내라’고 외쳤던 기자들의 낯선 풍경이 오버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