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고층 건물의 불빛이 하나 둘 잠들 시간, 촛불들이 대신 여의도를 밝히고 있었다. 하늘을 갈라놓을 듯 천둥번개가 으르렁거렸다. 때 아닌 소나기는 폭격처럼 쏟아졌다. 그렇지만 촛불은 의연하게 타올랐다.
12일부터 시작된 시민들의 ‘KBS 특감 반대 촛불집회’. 13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 8백여명의 시민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KBS를 휘감았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이부터 초로의 노신사까지, 겉모습은 다. 하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는 구호들이 터져 나왔다.
“표적감사 중단하라.” “최시중은 물러가라.” “유인촌은 물러가라.” “언론탄압 중단하라.”
미국산 쇠고기는 먹거리의 문제였다. 계급과 계층, 이념을 넘어 하나 될 수 있는 교집합이었다. 그런데 KBS 문제는 약간 달라보였다. 이들은 왜 여기에 모였을까.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중년 주부는 “말 잘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라며 한사코 대답을 피했다. 그러나 조금씩 입을 열었다.
“(KBS도) 조중동처럼 되면 어떡해요. 아이들을 생각해서 나왔어요.”
그는 한 손으론 딸의 고사리 손을 이끌고, 등에는 아들을 업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조심스레 촛불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엔 소박하지만 거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품은 듯 했다.
이런 광경의 한 켠에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KBS 기자와 PD들이었다. 취재하러 나온 것은 아닌 듯 했다. 그들은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수백 개의 촛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을 아꼈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어떤 상념이 피어오르고 있을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KBS를 둘러싼 논란이 언제까지 갈지는 넘겨짚기 쉽지 않다. 무더운 여름의 터널을 지나면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올까. 그날까지 촛불은 여의도를 밝히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