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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의 싸움 끝나지 않았다

국민 세계 문화 한겨레 공채 1기 20년

특별취재팀  2008.06.04 14: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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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 언론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발행의 자유가 주어지면서 1988년 5월 한겨레를 시작으로 국민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가 속속 창간됐다. 뜻있는 젊은이들은 신생 언론사로 모여들었다. 창간 당시 입사한 기자들인 공채 1기. 그들은 지난 20년간 한국 신문과 영욕의 세월을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한겨레, 국민·세계·문화일보의 공채 1기를 통해 한국 신문의 굴곡의 역사를 되짚는다. <편집자주>


국민 세계 문화 한겨레 공채 1기 20년


세상과의 싸움 끝나지 않았다

언론 자유화 물결타고 기자 입문 ... IMF에 동료, 선후배 떠나보내고
신문 영향력 상실한 위기의 시대 ... 후배와 합심해 바른 언론 만들기


△ “어느 순간에 눈 떠보니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 다니고 있더라.” 지난달 30일 만난 한겨레신문 공채 1기인 Y기자는 지난 20년간 정신없이 살았다고 했다. 현장을 누비고,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쓰느라 재테크나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순간순간이 치열한 긴장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런 20년을 지나오면서 어느새 그의 귀밑머리도 허옇게 셌다. 한겨레도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는 그는 “풍부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신문을 만드는데 후배들과 머리를 맞대겠다”고 했다.

△ 87년 6월 항쟁의 성과물로 창간된 신문에 입사한 공채 1기는 한겨레 23명, 국민 15명, 세계 33명, 문화 12명. 이들 기자들은 당시 수백에서 수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문사에 입사했다. 각 신문마다 태생적 차이가 있지만 1기들은 오랫동안 군사정권에 억눌린 국민들이 언론의 자유를 갈망한 시기에 기자생활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가슴 밑바닥에는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었다.

기자 초년병 시절에 5공 청문회, 3당 합당, 대통령 선거, 문민정부 출범 등 급변하는 정치 경제적 상황을 목격하며 기사를 작성했다. 기자일이 익숙해질 무렵, 신문사간 치열한 증면 경쟁이 시작됐고 그런 와중에 IMF라는 괴물이 찾아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온 나라를 흔들었고, 신문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문들은 언제 증면경쟁을 벌였나는 듯 앞다퉈 감면을 했고, 감봉, 감원 등 구조조정의 유령이 신문사 주위를 배회했다.

경영환경의 악화는 내부의 시련으로 이어졌다. 1998년 세계일보 기자들은 경영진의 경영횡포와 편집권 전횡에 반기를 들고 94일간 파업과 철야 농성을 했다. 경영 위기로 워크아웃 직전까지 간 한겨레는 2004년 11월 40여명의 기자를 떠나보내는 아픔이 있었다. 문화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고, 국민은 조희준 회장 퇴진과 맞물려 내부적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1기들의 시련기는 최근 3~4년이었다. 이른바 ‘이직 도미노’가 전염병처럼 번지면서 동료와 선후배들이 회사를 속속 그만 두었다. IMF 직후 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무더기로 사표를 냈다. 외환위기 때는 등 떠밀려 나갔지만 지금은 자진해서 사표를 쓴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특히 많은 후배들이 신문의 비전 없음을 얘기하고, 메이저 언론사나 대기업이나 정부기관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나도 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다.

20대 열혈청춘에 기자를 시작해 이제 40대 중후반이 된 공채 1기. 그들만큼 각 신문사에서 부침을 거듭한 세대도 드물다. 그들의 이미지가 개혁, 사명감, 희생 등으로 점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언론 자유화 바람을 타고 기자로 입문해 질풍노도의 90년대를 겪고, 신문의 여론 주도력이 상실된 위기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는 그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다.

△ “이건 잠이 아니야. 그냥 지쳐 쓰러진 거지.” 지난달 29일 오후 문화일보 편집국. 공채 1기인 C기자는 잠에 취해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새벽같이 출근해 기사를 발제하고, 후배들의 기사를 데스킹하며 전쟁같은 오전을 보내고 난 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이다. 수석 차장인 그는 요즘 책상에 붙박이로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화통을 붙들고, 기사를 지시하며 후배들을 독려한다. 때로는 술자리를 만들어 후배들을 격려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무슨 생각하며 사느냐는 질문에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특별취재팀 = 김성후 기자 kshoo / 김창남 기자 kimcn / 민왕기 기자 wanki@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