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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지 한계 딛고… 창간20년 앞둔 국민, 세계

민왕기 기자  2008.05.28 14: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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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와 세계일보가 창간 20주년을 앞두고 각각 기념사업단을 출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은 1988년 12월10일, 세계는 1989년 2월1일 창간했다. 두 신문은 각각 순복음교회와 통일교를 모태로 태동, 후발 주자로 언론에 뛰어들었지만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언론계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종교지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도 종합일간지로서 성장해온 두 언론사의 성과와 한계, 과거와 미래를 짚어봤다.




   
 
   
 
국민일보, 올해 창간 20년…종합일간지 위상 고수
적극적 이슈 파이팅 부족하다 지적도

국민일보가 탄생한지 올해로 꼭 20년째다. 국민은 1988년 창간해 ‘최고의 신문’을 목표로 종합일간지로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다. 서울 지역 구독률도 4위권이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비판적 지식인들이 대거 국민으로 입사하기도 했다. 다만 적극적인 이슈 파이팅이 부족하다는 점은 국민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민일보와 순복음교회
창간 당시 국민의 모토는 ‘복음을 실은 종합일간지’였다. 이에 따라 순복음교회도 신문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신문에 복음을 섞어 문서선교를 한다는 조용기 목사의 포부도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순복음교회 신문’이라는 외부의 시선이 곤혹스럽기도 했다. IMF 위기도 있었고 기독교 교계의 배척도 있었다. 지금처럼 전반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던 때다. 

이런 문제는 종교면 발행 등을 통한 소통으로 점차 해결됐다. 2007년에는 조용기 목사가 국민문화재단을 출연, 국민일보 지분 1백%를 한국교회 전반으로 돌리기도 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역할하게 된 것이다. 이는 국민이 기독교계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문제는 종합일간지를 지향하는 기자들과 복음에 충실한 신문을 원하는 교계의 주문을 어떻게 절충시키느냐였다. 누가 뭐래도 기자들은 ‘신문쟁이’이고 교단의 바람은 바람대로 조화시켜야 하기 때문.

이진곤 논설고문은 “종합일간지로서 기능하면서도 복음을 조화롭게 전해야 한다는 고민을 한지 오래됐다”며 “국민일보를 종교지로만 보는 시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교계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거나 정치권 봐주기 등 균형감을 상실한 보도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일보와 노조
국민일보가 이렇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잃지 않고 있는 원동력은 ‘노동조합’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 노조는 오랜 투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만큼 국민은 위기상황에서 노조를 통해 뭉치고 목소리를 냈다. 회사 측 역시 노조의 목소리를 발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건강성이다.

노조는 창간 3개월만인 1989년 2월16일 조합원 1백39명으로 결성돼 순조로운 길을 걸어오다 1999년 시련을 겪는다. 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씨가 ‘경영합리화를 위한 분사’ ‘제작국 분사’ 등을 노조에 통보해오면서 장기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

이 과정에서 김용백 노조위원장의 무기한 단식농성 등 노조의 강경한 반발이 지속됐고 결국 조씨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노조와 기자들로선 힘겨운 싸움이었다.

또 당시 조씨가 스포츠투데이, 파이낸셜뉴스 등을 창간하면서 국민일보의 성장 동력에 제동이 걸려 기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국민 노조는 최근에도 박미석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의 논문 표절 기사 누락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농지 투기 의혹기사 누락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강성을 재확인시켰다.

또 동료기자가 사망했거나 가족이 병 중일 때, 전직원 참여해 1~2천만원의 성금을 모금할 만큼 단결이 잘 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국민은 2001년 3백15억원이던 매출을 점차 증가시켜 2007년에는 4백88억원으로 늘었다. 2004년부터 4년간 30억~50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재정도 괜찮은 편이다. 국민일보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세계일보,구조조정 상처 뒤로 하고 미래향한 새 발걸음
재단·경영진의 기자처우 인식전환 필요

세계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구조조정으로 편집국은 상처를 입었지만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 신사옥 이전 등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더 이상의 구조조정도 없을 것으로 예상돼 회사 내부도 안정되는 추세다.

다만 기자들의 처우에 대한 통일교재단과 경영진의 의식전환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비판도 있다. 여러 차례의 구조조정으로 생긴 아픈 과거를 어떻게 봉합하느냐도 문제다. 또한 경영자립도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일보와 통일교
세계는 1989년 2월1일 창간됐다. 창간 당시 최고 연봉으로 방송사 기자들까지 지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문선명 총재의 관심도 상당했다.

제호도 문 총재가 직접 썼다. 지난 2003년 도입한 한글제호 위를 살펴보면 작은 글씨로 한자 제호가 적혀있다. 그 제호가 바로 문 총재가 쓴 글이라고 한다.

그러나 통일교 재단 인사가 내려오다 보니 기자들과의 갈등도 잦았던 것은 문제였다. 대표적으로 지난 1997년 이상회 사장 부임 이후 편집국장을 비롯한 편집부국장, 정치부장, 경제부장 등 주요 포스트들이 모두 외부인사로 채워졌고 개혁 성향의 기자들은 비기자직으로 발령이 났다.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했던 이유다. 이후 기자들이 대거 해직되면서 세계는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세계는 재단의 간여가 적지 않았다.

2007년에는 문총재의 셋째 아들인 문국진 통일그룹재단 이사장이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판도 변화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 부회장은 하버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인물로 3년 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다. 기업 경영에 탁월해 그룹 소유 국내외 기업을 모두 정상으로 돌려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가 세계의 경영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언론을 경영으로만 평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세계일보와 젊은 기자들
구조조정 여파에서도 세계의 기자들은 이미 그 실력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게 언론계의 평가다. 실제 2007년에는 관훈언론상과 삼성언론상 엠네스티언론상 등 굵직한 주요 언론상을 휩쓸기도 했다. 특별기획취재팀을 중심으로 한 탐사보도는 이미 언론계 최고봉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젊고 실력있는 기자들이 최근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 몇몇은 방송사와 타 언론사로 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가 뚜렷한 미래비전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신사옥 이전과 함께 세계의 성장동력이 어떻게 가동될지 주목된다. 최근 유통·물류 경제전문지 ‘eHUB’를 창간, 새로운 동력으로 삼은 것도 언론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세계는 통일교의 영향권 하에 있지만 뚜렷한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는 언론사는 아니었다. 문선명 총재의 동정이 지면에 실리긴 했지만 따로 미션면을 두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적극적인 보도와 풍성한 읽을 거리로 인구에 회자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다만 지난 총선 때 평화통일가정당에 대한 보도는 지나쳤다는 평이다.

언론계에서는 탐사보도 등 세계의 특성을 극대화할 경영진과 재단의 의지가 얼마나 발현될지 기대를 하고있다. 내년 창간 20주년을 맞아 세계가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