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최시중 '언론인개별접촉보고서' 파장

88년 정부관리에 사내 동향․보도방향 전달 의혹

곽선미 기자  2008.03.08 00:14:50

기사프린트


   
 
    언론인개별접촉보고서를 전문 공개한 기자협회보 1988년 12월23일 10면. 여기에는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던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가 문공부 협력관을 만나 사내 보도동향 등을 알려준 것으로 나와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1988년 언론통제 논란을 빚었던 ‘언론인 개별접촉 보고서’ 에 정부 관리를 만나 회사 동향과 보도 방향 등을 알려준 것으로 나와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현재 최시중 내정자에게 ‘올림픽 이후 개헌’ 지지발언 등 관언 유착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언론인 개별접촉 보고서’ 파문은 1988년 당시 문화공보부(이하 문공부) 홍보정책실이 언론사별로 접촉대상자를 선정해 보도협조 요청 사항을 알려주고 사내동정을 입수해 작성한 보고서가 기자협회보, 한겨레신문에 공개돼 일어났다.

기자협회보는 1988년 12월16일자 1면에 “접촉대상자 중에 언론계 중진인사들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다”면서 “보고서상에 나타난 대로라면 주고받은 내용이 자사의 동정에서부터 노조와 젊은 기자들의 움직임, 사설․논평의 흐름까지 일일이 짚고 있어 개별접촉의 ‘긴밀성’을 노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언론인과 정책관의 실명, 만난 장소, 비용, 대화 내용 등이 적힌 개별접촉보고서의 원문을 협회보에 그대로 게재해 현직 언론인과 정부간 관언유착의 심각성을 고발했다.

전문의 일부가 실린 이 개별접촉보고서에서 최시중 내정자는 모두 두 차례 등장한다.

개별접촉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일보 정치부장이었던 최 내정자는 총선 직전과 직후인 1988년 3월과 4월 문공부 정책관을 '향진' '공간'이라는 고급음식점에서 만났다.

최 내정자는 1988년 3월31일 이 모 정책관을 만나 새마을 사건 관련 보도의 객관성을 유지할 것을 요구받은 것으로 적혀있다. 또 이 정책관은 최시중씨에게 선거와 관련해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보도성향을 배제할 것과 소장기자들의 순화노력을 제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최 내정자는 같은 해 4월29일 서 모 정책관과 다시 만났다. 이때 서 정책관은 △여소야대의 국회와 정부의 국정운영에 언론역할을 어떻게 보는지 △언론이 보는 민정당과 정부 입장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그는 이 질문에 “민정당은 야당 행세, 3김당은 여당행세를 할 것이다. 3당이 합의해서 밀어 붙일 안건은 첫째 광주사태 진상조사,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와 친인척비리조사를 위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여 기선을 잡을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올림픽은 아무리 정부에서 내세워도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동아일보 논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동아일보 등 언론은 이 두 건의 국정조사권 발동을 지지하고 철저조사를 주장하고 나올 것은 명약관화하다”면서 “전 전 대통령 처남 이창석 비리에 관해 제보가 많다. 사회부에서 하나씩 터트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 내정자는 또 이 자리에서 “동아가 3김씨 인터뷰를 결정하고 JP(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부터 먼저 하지 않느냐는 말이 있었다”, “평민당이 제2당이라는 이유로 김대중씨와 평민당의 주장을 확대 보도, 또는 반영시킬 것이라는 관측은 추측에 지나지 않다”, “김대중씨가 대화와 안정을 주장한 것은 전략상 후퇴, 위장적 가식으로 보는 견해는 잘못됐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기자협회보는 1988년 12월23일자 ‘우리의주장’ ‘‘개별접촉 보고서’를 보고’에서 “언론인들이 자사 내부의 동정에서부터 노조와 젊은 기자의 성향과 움직임까지 일일이 문공부 관리에게 ‘보고’ 했다”며 “이는 반민주적 반언론적 밀고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협회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관언유착의 책임은 1차적으로 정부에 있다”면서 “또 보고서 자체에 허위․왜곡․과장이 있어 보고서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하더라도 언론인들이 저항감없이 정례적으로 만났으며 사내 동향은 날조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