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아니라 그 어떤 기업의 비자금도 이런 약탈적 규제 천국에서는 정당방위다.”(한국경제 2007년 11월 다산칼럼 ‘규제천국, 비자금은 정당방위다’)한국 경제지들에게서 비판적 ‘경제 저널리즘’이 실종되고 있다.
친 기업, 친 시장주의적인 보도가 한국 경제지들의 ‘태생적 한계’라고 하지만, 국내 경제지들은 이를 넘어 ‘기업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비자금은 정당방위’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나올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기업 규제 완화 요구, 출자총액제 폐지, 금산분리법 폐지,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부동산 보유세 축소, 부유세 폐지, 법인세 인하, 의료보험 민영화 등에도 검증 없는 ‘시장주의’ ‘기업 편의주의’를 덧씌우기 바쁘다는 진단도 나온다.
그들만의 명분 ‘경제 살리기’경제지들의 이런 ‘시장주의 저널리즘’은 삼성특검 보도로 집약된다. 삼성 비자금에 대한 침묵, 왜곡 보도에 이어 최근에는 ‘경제 걱정’으로 선회, ‘삼성 걱정’을 하고 있다.
삼성 특검이 주목하고 있는 내용보다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해를 입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한국경제 살리기’라는 그들 만의 명분도 확보하고 있다.
파이낸셜 뉴스는 지난달 27일 사설 ‘일본 반격 거센데 손 묶인 삼성전자’에서 “일본 소니와 샤프가 차세대 LCD 합작사 설립을 공표했다”고 운을 뗀 뒤 “그룹 차원의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에 삼성 경영진은 줄줄이 특검 사무실을 들락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4일 ‘소니 이어 또 어떤 거래선 이탈할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룹 관계자의 말을 인용 “임직원들의 동요도 문제지만 이 전무에 이어 이 회장까지 소환될 경우 삼성의 대외 이미지는 급격히 악화될 수밖에 없다. 국내외 주요 거래선들의 동요도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헤럴드경제, 아시아경제, 매일경제 등도 이같은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등 기업규제 완화 정책에도 찬사를 보내고 있다.
매일경제는 3일 사설 ‘세수 넘친 정부 획기적 감세안 내야’에서 “홍콩 대만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는 이미 법인세율을 16~18%대까지 낮췄다”며 “세율 인하는 경기침체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학계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의 법인세율은 각각 39.3%와 39.5%, 뉴질랜드는 33.0%, 영국은 30.0%, 호주도 30.0%에 달한다. OECD 국가 가운데 사회경제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나라일수록 법인세율이 낮다는 것이다.
외국 경제지 사례 본받아야이같이 한국 경제지들은 ‘아전인수식’ 경제 논리를 사실처럼 확산시키고 있다. 그러나 외국 경제지들의 경우 대기업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곳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례로 2002년 미국의 회계부정 사건을 든다. 당시 미국 언론에 이 사건은 ‘회계부정은 정당방위’가 아니었다.
2001년말 회계부정으로 세계 최대 에너지기업이었던 엔론사가 파산신청을 한 후, 2002년 월드컴 타이코인터내셔널 글로벌크로싱 아델피아 등 대기업의 스캔들이 터졌다.
이에 미국 정부는 회계감독위원회를 설치, 기업 규제에 나섰고 기업의 회계부정을 막기 위해 2002년 7월 일명 사베인스-옥슬리(Sarbanes-Oxley)법으로 불리는 기업회계개혁법을 만들었다.
주목할 것은 이 법을 만드는데 미국 경제지를 비롯한 언론들의 비판적 보도의 공이 컸다는 것이다. 삼성 스캔들과 엔론 스캔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지적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 경제지들의 경우 삼성경제연구소 등의 SERI 보고서조차 그대로 풀어 보도한다”며 “특정 이익단체의 보고서 전문을 인용해 보도하는 곳은 한국 경제지들이 유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 등 외국 경제지와 같이 국가 경제를 객관적,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지들이 대기업 위주의 경제 모델만을 제시, 국민들이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김서중(민언련 대표) 성공회대 교수는 “경제 전문지라면 기업 소식지가 아니라 한국경제를 객관적으로 다뤄주는 매체가 돼야 한다”며 “경제 중심의 보도는 당연하지만 기업에 초점을 맞춰 경제지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방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