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이 25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전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창업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손자로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광고부장, 판매부장, 상무, 전무, 부사장 등을 지낸 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동아일보 회장을 지냈다.
1987년 고인이 발행인에 취임하던 첫 해에 동아일보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동아일보 측은 “고인은 군사정권의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성역 없이 보도하도록 기자들을 격려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언론인으로서도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1995년 중국 리펑 총리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으로 단독회견을 했고, 1998년에는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공식 초청을 받아 남측 신문 경영인으로는 처음으로 방북했다.
고인은 동아일보를 종합미디어그룹으로 육성하기 위한 물적기반을 마련하는데 노력했다. 90년대 들어 충정로에 대형 사옥과 광화문에 동아미디어센터를 건립했으며 오금동 공장과 대구 공장, 안산 공장을 준공해 초고속 윤전시설을 갖췄다. 1993년 조간으로 바꿨으며 이어 98년 전면 가로쓰기와 섹션신문으로 변혁을 이어갔다.
교육 분야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99년 고려대와 중앙중고교, 고려중고교 재단인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으로 취임, 고려대 개교 100주년(2005년)을 전후해 지하중앙광장, 100주년 기념관, 화정체육관 등을 차례로 완공했다. 2005년엔 한국디지털교육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병관 전 명예회장은 김대중 정부의 탈세 조사로 거액의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서 추락의 길을 걸었다.
김 전 회장은 탈세 사건으로 2001년 1월 27일 명예회장직과 이사직 등 동아일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뒤 구속돼 대법원에서 벌금 30억원 판결을 받았다. 그해 7월에는 탈세 조사 등의 충격으로 부인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지난 1974년 ‘동아일보’ ‘동아방송’에서 대량해직 된 기자들이 모인 동아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가 요구한 진상 규명과 사죄 요구는 고인의 별세로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유족으로는 장남인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차남 김재열 제일모직 상무, 김희령 일민미술관 실장 등 2남1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