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화배우의 말처럼 '남들이 다 차려놓은 밥을 맛있게 먹기만 한' 팀의 막내가 수상소감을 쓰려니 겸연쩍다. 날짜를 정확히 기억 못하지만 지난해 3월초였다. 취재 마치고 그날 저녁 회사에 복귀하다 덕수궁 길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회사 로비 유리문에 손가락이 끼기도 했다. 뭔가 불길했다.
예감이 적중했는지 사회부장은 '지식인팀 파견' 지시를 내렸다. '지식인의 죽음' 기획팀을 꾸리기 위해 정치부, 문화부, 사회부에서 1명씩 차출당해야 했는데, 하필 내가 지목됐다. 기자 경력의 절반 이상을 '사건기자'로 보낸 5년차 햇병아리가 언감생심 '한국의 지식사회'를...
첫 기획회의 날 가안으로 하달된 기획안만 봐도 2개면 이상 20회가량 장기 연재가 예정돼 있었다. 취재해야할 분량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더욱이 지식인, 지식사회란 추상적 주제를 어떻게 기사로 가시화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정치부 김종목, 문화부 학술담당 손제민 선배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취재팀은 '담론으로 전하지 말자', '데이터를 직접 만들자', '코멘트와 케이스로 풀어내자' 등 '지식인의 죽음' 기획 원칙을 정했다. 안팎으로 싸워가며 원칙대로 지면을 구성해 나갔다.
당초 "두 선배는 머리, 나는 손발" 정도의 '속 편한' 각오로 시작했지만 나도 당장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기사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열심히 기사와 논문 등을 찾아 읽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 등 학자들을 만나 취재를 빙자한 과외 학습도 수시로 받았다.
취재팀은 학계와 시민사회의 여러 분들을 만나 최대한 생생한 사례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재일학자 윤건차 교수처럼 직접 만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e메일 인터뷰를 했다. 나 혼자서 주고받은 취재 e메일 건수만 따져도 100회가 넘었다. 실증적 분석을 위해 각종 학회, 학술재단 등으로부터 다양한 통계자료도 확보했다. '지식인 지도', '문민·군사정권 넘나든 장·차관 분석', '지식인 설문', '해외 박사 분석' 등이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지식인의 '죽음'이란 타이틀은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죽어가는 지식사회에 장기 연재를 통해 비수를 꽂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 "정보화사회 속에서 대중이야말로 엄연한 지식인이 아니냐" 등 학계의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지식인의 죽음'은 지식인을 살리자는 캠페인이나, 한국 지식인의 역사를 다루는 학술논문이 아니었다. '87년 체제' 이후 여러 담론 생산자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20년이 지난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실증적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이같은 취지를 제대로 읽고 응원을 보내준 많은 독자들께 감사한다. 또 '지식인의 죽음'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음을 거듭 밝혀둔다. 고선생의 인터뷰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의 죽음을 예감하다'는 미발표 논문이 기획의 밑거름이 됐다. 특히 넉달 가량의 준비 및 연재 기간 동안 ‘고집스럽게’ ‘독하게’ 데스크를 보고 취재팀을 지휘하며 팀원들을 종종 극한 상황까지 몰곤 했던 이대근 정치에디터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항상 옳은 방향으로 취재팀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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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회 한국기자상에서 "민주화20년, 지식인의 죽음"으로 기획보도부문 상을 수상한 경향신문 취재팀 (왼쪽부터 김종목 기자, 손제민 기자, 장관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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