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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28일 민족일보 사건으로 혁명재판에 회부되어 법정에 들어가는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와 송지영, 그리고 이종률(왼쪽부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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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려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다.”
바스티타 독재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남긴 유명한 최후진술이다. 한국에서도 역사가 무죄를 선고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김용석 부장판사)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31세의 젊은 언론인이었던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47년 만이다.
‘민족일보 사건’은 1961년 5월 박정희 군부가 진보성향의 신문인 민족일보의 조 사장을 ‘간첩 혐의자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하고 북한의 활동을 고무 동조했다’는 혐의로 체포한 뒤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을 소급 적용해 같은 해 12월 처형한 대표적인 ‘사법 살인’ 사건이다.
민족일보는 1961년 2월 창간됐으며 6개월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성공을 거뒀다. 당시 신문평론은 “불과 반개월 동안에 5만부의 부수를 발행하게 된 것은 어용지, 보수지의 민의봉쇄 장난에 증오감을 느끼기 시작한 국민(독자)들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한편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만큼,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준비할 뜻을 비추고 있다. 사상 최대의 배상액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족일보 사건’의 경우 언론사 사주 살해, 언론사 자산 압수, 신문사 직원 일가족의 전재산 압류 등이 있었음을 고려해서다.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 의문사의 경우 18억원, 수지 김 사건의 경우 42억원, 인혁당 사건의 경우 2백45억원이 국가 배상된 전례가 있다.
오랫동안 ‘민족일보 사건’을 추적해온 경향신문 원희복 기자는 이에 대해 “배상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씨가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원 기자는 “이번 판결은 당연한 결정”이라며 “문제는 배상해야 할 돈이 국민들이 낸 세금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부정 축재한 돈으로 박근혜씨 등 그 일가의 재산이 형성된 것 아니냐”며 “아버지의 후광을 입은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의 책임의식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