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회담은 상대가 있고 협상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단 숨에 모든 것을 관철해야 한다는 시각은 회담,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29일 군사공동위 구성, 상호 무력 불사용, 분쟁의 평화적 해결, 경협사업의 군사적 보장, 내년 3월 서울 국방장관 회담 등 7개 항의 합의문을 내고 끝났다. 7년 만에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은 많은 성과를 이뤘고 합의가 안 된 사항은 다음 회기로 미뤘다. 이에 대한 조중동의 30일 치 기사와 사설은 남과 북이 이룬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매우 인색한 반면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인 듯한 대결적 시각이 가득하다. 이들 수구 보수 신문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앞세워 힘겨루기로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냉전적 시각만이 넘쳐난다.
동아일보는 ‘NLL 양보 불가 관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제2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북측은 공동어로수역을 빌미로 NLL의 무력화에 전력을 기울였지만 남측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썼다. 북이 “공동어로수역 NLL 남쪽에 두자”면서 경계선 무력화 시도를 벌였지만 김장수 국방장관이 ‘꼿꼿하게’ 버텼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사설 ‘對北 경협 합의는 역시 졸속이었다’에서 “어제 평양에서 끝난 남북 국방장관회담은 앞서 서울에서 열린 총리회담(11월 14∼16일)의 합의가 얼마나 성급한 것인지를 잘 보여 줬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비롯한 군사 현안은 해결하지도 못한 채 49개나 되는 ‘경협(經協) 보따리’를 북에 안겨 준 결과가 됐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국방장관 회담에서 NLL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총리회담의 핵심 합의사항인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를 위한 구체적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설 내용은 국방장관 회담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는 이날 치 스트레이트 기사의 내용과 부딪친다.
동아일보의 국방장관 회담 스트레이트 기사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 “이번 회담이 2000년 9월 제주에서 열린 1차 회담 이후 7년 만에 열렸지만, 향후 각종 경협사업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실무 차원의 군사접촉이 잦아지면서 신뢰가 쌓일 경우 군 수뇌 간 정기적 만남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남북은 또 다음 달 초 군사실무회담을 열어 경협사업의 군사적 보장조치를 최우선적으로 협의하기로 함에 따라 ‘2007 남북 정상회담’과 남북 총리회담 등에서 합의한 문산∼봉동 경의선 화물열차 개통, 북한 민간선박의 해주항 직항, 한강 하구 공동 이용 등 경협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남북국방장관 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 문제에 합의 못해 ‘NLL 재설정’은 노 정부에선 없던 일이 될 것 같다”면서 “이는 청와대가 북에 양보 땐 대선에서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한 때문인 것 같다”고 썼다. 또한 “NLL 재설정 논란은 다음 정부로 미뤄지게 됐다”면서 “결국 차기 대통령의 의중이 ‘NLL 재설정’의 운명을 정하게 되는 셈이다. 유력 대선후보 중 이명박 한나라당,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입장은 ‘NLL고수’다. 현 정부의 입장과 상반된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만이 공동어로수역과 서해평화지대 설정에 적극적이다. 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않는 한, 차기 정부에서 NLL 재설정 문제를 추진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해진 상태다”라고 전망했다. 이는 남북 회담을 대선 또는 정파적 틀 속에서만 보는 좁은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 순항중인 6자회담의 합의사항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이 가까워 오지만 이 신문은 남북문제를 국내 정치로 국한시키는 냉전적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사설 제목은 “NLL은 건드릴 생각도 말라”이다. 이 사설은 “국민들이 기대했던 대로 김장수 국방장관은 NLL을 지켜냈다. NLL에 대해 ‘영토선이 아니다’ ‘어릴 적 땅따먹기나 한가지다’ ‘다시 그어도 아무 문제 없다’던 대통령의 말도 먹혀들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장관이 대통령과 맞장 뜬다는 식의 논리인데 이는 결국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독기를 품고 있다.
이 신문 사설은 “NLL을 스스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내심 고마워하기까지 하던 북한이 갑자기 트집을 잡고 나선 이래 결국 남측으로부터 공동어로수역이라는 양보까지 얻어내게 됐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북한이 역사적으로 취했던 NLL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전혀 고려치 않았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국방장관 NLL 잘 지켜냈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측은 이번에 NLL에 대한 남측의 입장이 얼마나 확고한지 실감했을 것이다. 다음 회담 때는 NLL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기 바란다. 이 정권도 ‘NLL이 영토선은 아니다’는 등 엉뚱한 소리는 더 이상 내지 말라”고 주장했다. NLL에 대해 대 못질을 해서 현상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자세로 임하면 향후 남북 회담이나 협상은 곤란해진다. 상대방의 주장도 경청하면서 문제를 푼다는 자세가 바람직한 것 아닌가?
중앙일보는 이날 “김정일 ‘대선 한복판’ 시선 끌기 - 김양건 서울 보내고 … 힐 평양에 부르고 김영남 내년 1월 서울 방문 협의 중”이라는 기사에서 17대 대선을 눈앞에 두고 남북한과 미국 간에 회담과 행사가 쏟아지고 있다고 썼다. 이런 시각은 국내외 정세를 대선이라는 시각에서 판단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우를 범하고 있다.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29일 서울을 찾은 것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후 그렇게 했던 전례가 있는 일이고,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다음달 3~5일 평양에 가는 것은 6자회담이 순항하고 있다는 큰 틀에서 평가할 문제가 아닌가?
모든 회담이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천 리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지 않았나? 남북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평화 정착과 교류 협력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협상을 대결구도로 보고 평가하거나 국내 정치용으로 평가절하 하는 시각은 매우 부적절하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역사적 대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