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음모의 시선으로 보면 음모 천지로 보인다. 언론이 음모적 시선으로 보도하면 불신과 대립이 조장될 개연성이 높아진다. 언론보도에서 사실 관계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서울 방문에 대한 29일 조중동의 기사는 음모적 시선과 상상력이 넘쳐 난다. 조선일보의 관련 기사 제목은 “북한 ‘대남(對南)총책’ 돌연 서울에”, “김정일 친서 전달? 대선 탐색?” 등으로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한 수구 세력의 무책임한 발상을 기사 속에 담았다. 이 신문은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김양건 부장 등 북측 대표 5명이 남북정상선언 이행을 중간 평가하고, 경협사업 추진에 필요한 (남측)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육로로 방남(訪南)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하면서도 “대선을 20일 남겨놓고 ‘대남 총책’인 김 부장이 서울을 찾는 실제 이유에 대해서는 ▲남북정상선언과 관련한 김정일 위원장 메시지 전달 ▲남한내 대선 상황 현장 탐문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에 앞선 사전 방문 등 각종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 당국자의 공식 발언을 불신하면서 음모적 시각을 기사로 내보내는 고질적인 보도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김양건 北통일전선부장 오늘 서울방문’ 기사의 작은 제목이 “대북정책 ‘대못질’에 호응? 대선 北風드라이브 동승?”이다. 이 신문은 “정상회담 이행을 위한 각종 회담이 순조롭게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선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김 부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것은 일종의 ‘북풍(北風)’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도 남북관계를 ‘대못질’해 놓으려는 현 정부의 시도에 적극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썼다. 6자회담 순항 등으로 평화 무드가 고조되는 동북아 상황을 외면한 채 남북 정부의 평화 정착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대선에 미칠 파장을 걱정하는 논조다.
중앙일보는 “김양건, 갑자기 서울 오는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부장의 방문이 대선 막판의 민감한 시기에 성사돼 정치권에선 다양한 관측과 분석이 나왔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선 이전에 북한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서울 방문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김양건 부장의 정치적 비중을 감안할 때 김정일 위원장의 동선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 정상의 개성공단 동시 방문 같은 깜짝 이벤트를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고 썼다. 이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김 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가 아니라 통일부 장관 및 김만복 국정원장의 초청으로 온 것이며 남북정상선언 이행 문제를 논의하고 경제 시설을 시찰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한 것에서 한참 빗나간 추측성 내용이다.
조중동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서울 방문’ 두고 음모론 덧씌우기에 올인
조중동의 이 같은 논조는 한나라당이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전격적인 서울 방문에 극도의 경계감을 드러낸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나라당은 대선을 20일 앞두고 이뤄진 그의 방한에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또다시 ‘북풍’(北風)이 불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서울행에 대한 기사와 달리 경향신문, 한겨레 등의 기사는 매우 차분하다. 경향신문은 “김양건 북한 통일선전부장의 서울 방문은 2000년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북측 고위당국자가 남측을 찾았다는 점에서 어색하지 않다”면서 “이번 방문에서 양측은 정상회담 합의 이행의 미진한 부분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3~4자 정상의 종전선언 문제 등 남북회담에서 다뤄지기 애매한 의제가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김 부장이 대남 주무부서의 수장으로서 경제협력 현장 등을 둘러보며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 쌓기’ 목적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또한 북한의 대외 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김만복 국정원장이 지난 14일 국회 정보위 국정감사에서 “김 상임위원장은 우리가 협조하면 남쪽에 내려올 수 있지만 그 시기는 대선 기간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한 것을 기사화했다.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방문은 2000년 9월 김용순 부장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2000년 9월 김용순(2003년 사망) 당시 통전부장 겸 노동당 대남 비서는 김정일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서울에 왔었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2007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7월 29일 북측에서 먼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김만복 국정원장의 방북을 공식 초청함에 따라, 김 원장이 두 차례(8.2~3, 8.4~5)에 걸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하여 성사됐다. 이런 점을 상기하면 이번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방북을 음모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수구 언론이 대북 관련 보도에서 추측성 기사를 남발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지각변동을 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과거의 파괴적인 타성이 반복되는 것은 언론의 큰 수치다. 언론은 언제나 사실을 정확히 보도하고 그에 입각해서 논평해야 한다. 수구 언론이 대선에서 보수 후보의 승리를 목표로 삼아 남북관계에 대한 왜곡 편파보도를 쏟아놓는 음모적 시각은 이제 그만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