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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 또 언론책무 떠안다

19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 폭로
20년만에 삼성의혹 세상에 알려

김성후 기자  2007.11.14 1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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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쏟아지고 있다. 사제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커다란 파문을 던지고 있다. 사제단의 잇단 폭로로 막강한 자금력과 정보력, 인맥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치던 ‘삼성공화국’의 실체는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12일 ‘삼성 떡값 검사 명단’ 공개로 우리나라 권력의 핵심인 검찰도 삼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했다. 삼성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 제기, 삼성의 대외 로비 지침을 담은 내부 문건, 삼성 떡값 검사 명단 공개…. 폭로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제단이 주목을 받은 것은 1987년 5월18일. 당시 김승훈 대표 신부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폭로했다. 그 어떤 언론도 하지 못한 사제단의 용기있는 폭로는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2007년, 사제단은 또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야만의 권력’이 아닌 ‘부패한 자본’에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언론은 사제단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며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언론이 아닌 사제단을 통해 삼성비리를 폭로했다는 점이다.

사제단 측은 “김 변호사가 10월18일쯤 우리를 찾아와서 모든 사실을 양심 고백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개인적인 번민을 나눌 지인이나 단체를 찾지 못하거나 또는 삼성의 불·탈법 행위를 폭로할만한 마땅한 언론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비자금 의혹에 침묵하거나 폭로 동기만 부각했던 대다수 언론들의 행태에서 드러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사회는 다방면에서 민주주의 진전을 이뤘다. 50년 만에 여야 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도 두 번이나 있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론을 정부의 감시와 통제 속에 가두었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 언론자유화의 물꼬가 트였다.

신문, 방송사의 숫자가 늘었고, 인터넷 매체도 기하급수적으로 출현하는 등 외형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양심 고백을 들어줄 언론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회사에 찾아왔어도 보도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하던 한 중견기자의 쓰디쓴 자조에서 ‘권력으로부터는 독립했지만 자본에게는 휘둘리는 언론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