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리 의혹 폭로를 계기로 내부 고발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1996년 정부의 압력에 따른 감사 중지 사실을 폭로한 감사원 전 직원 현준희씨,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조작 의혹을 처음으로 제보한 K씨 사례 등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내부고발 사건이었다.
이들의 폭로로 우리사회는 사회적 진전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부 고발자들은 파면·징계 등을 받거나 동료 조직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속에 ‘왕따’를 당하고 심지어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례도 생겨났다. 장기간 법정 싸움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는 제보자도 있다. 황우석 사건을 고발한 제보자 K씨의 경우 신분이 노출되면서 직장을 빼앗겼고 가족과 함께 몇 개월 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 시민단체의 보호를 받는 신세가 됐었다.
김 변호사도 지난 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지은 것에 대한 죗값을 치르고 양심과 영혼을 찾고, 사회에 기여할 수가 있어 기쁘다. 하지만 나와 인연 맺었던 사람들을 삼성이 괴롭게 하는 건 정말 힘들다. 정말, 그게 진짜 끝까지 힘들 거다”며 삼성 비리 고발에 따른 심적인 갈등의 일면을 내비쳤다.
우리나라에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부패방지법이 있다. 내부 고발자 보호 규정 등을 담고 있는 부패방지법은 2001년 7월 제정된 후 5차례 개정됐다. 하지만 현행 부패방지법상 부패행위 개념이 공직자와 공공기관 위주로 이루어진데다 법 위반자에 대한 징계수위도 낮아 내부 고발자 보호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지적에 따라 지난 8월 통과된 개정안에는 내부 고발자가 비공직자인 경우에도 보호받을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 민간기업과 민간단체 소속 내부 공익신고자도 공직자의 경우처럼 부패행위 신고를 이유로 신분상 불이익을 받았을 때 국가청렴위원회가 원상회복 등 적절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도 공무와 관련된 부패행위 신고에 한정하고 있어 민간기업 내부비리를 폭로한 민간인은 신분을 보장받지 못한다. 예컨대 민간인이 정부가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비리를 신고할 경우 보호받을 수 있지만 김 변호사의 경우처럼 삼성 내부 비리를 폭로한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특히 식품·위생·공중보건·소비자안전·환경 등 공익과 관련된 사안을 폭로하거나 사립학교 재단비리를 신고한 내부고발자도 부패방지법상 보호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민간부문의 내부신고자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절실한 대목이다. 참여연대 이재근 행정감시팀장은 “국가기관에 신고를 해도 신분보호가 잘 안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내부 고발이 줄어드는 추세”라며 “보호대상 보상금을 현행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하고 식품, 소비자안전 등 국민의 공익을 침해한 사례도 신고할 경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언론시민단체들의 요구로 정부가 추진 의사를 밝힌 내부고발자 보호를 위한 부패방지법 개정은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지난 9월14일 총리훈령 수정안 발표 당시 내부 고발자 보호 등을 위해 부패방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보공개법 개정에 적용되고 있는 논의체 구성 등과 같은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국가청렴위, 언론단체와 광범위하게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