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론조사학회(NCPP)는 1968년에 여론조사 공표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여론조사 방법 공표 기준에 대해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할 경우 표본의 정확한 크기, 여론조사의 후원자와 조사기관, 설문 내용과 순서, 표본오차와 신뢰수준, 모집단 규정, 자료수집 방법, 조사 시기 등을 밝혀야 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 정부는 1977년 ‘여론조사에 관한 법’을 제정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할 경우 목적, 질문내용, 조사지역, 표본수 등을 사전에 보고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대체로 선언적 의미이며 처벌 강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들은 지지율 여론조사를 발표할 때 신중을 기하고 있다. 지지율의 차이가 표본 오차를 넘지 않을 경우 ‘앞섰다’는 단정적 표현을 쓰지 않는다. 단순히 수치만 알리거나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보도하는 것이 관례다. 차이를 전하더라도 “진정한 차이라고 볼 수 없다”는 설명을 달기도 한다. NBC의 경우 2000년 공화당 조지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지지율이 각각 45%, 42%로 나타나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는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적지 않은 문제제기를 받았으나 최근에는 별다른 지적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에서도 관련 논문이 발표되고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 여론조사보도 역시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936년 당시 유력 잡지였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는 공화당 랜든 후보가 민주당 루즈벨트 후보를 이길 것으로 보도했다. 결과는 반대로 나와 루즈벨트가 63%의 지지로 당선됐다. 이 잡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폐간됐다. 1916년과 1932년 선거 결과를 정확히 맞춘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잘못된 표집 틀을 사용해 쓴맛을 봤다. 반면 갤럽은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명성을 얻게됐다.
갤럽 역시 오류를 저지르고 만다.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갤럽은 공화당 듀이 후보가 민주당 트루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것이라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시카고 트리뷴’ 등 유력지들은 갤럽의 주장을 인용 보도했다. 결과는 트루먼의 승리로 끝나 여론조사 보도의 신뢰에 타격을 줬다. 이를 계기로 이전까지 대표적인 조사방법이었던 호별방문 조사법은 사라지고 전화번호부를 틀로 한 표본조사 방법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 선거도 미국 여론조사 보도의 또 하나의 계기로 평가된다. 인터넷 조사기법을 기존 전화조사와 함께 사용한 ‘해리스인터액티브’(Harris-Interactive)와 ‘놀리지 네트워크’(Knowlege Network)의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에 더욱 근접하게 나타났다. 다음해 미 하원에서는 2000년 미국 대선 여론조사 문제점에 대한 청문회가 열려 여론조사를 할 경우 두 가지 이상의 방법을 이용하자는 합의를 만들었다. 이에 따라 ABC, NBC 등 유력방송사들은 여론조사를 복수 조사기관에 의뢰해 결과를 비교 보도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국내에서는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이 여론조사에 대한 법률을 입법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엄호성 의원 측은 “논란이 될 수 있는 오차범위 및 응답률, 설문내용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종합 검토해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