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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연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운영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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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구조본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달 29일 양심선언에 이어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비자금 조성의혹을 폭로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로서 삼성그룹의 의사결정조직인 구조본의 핵심요직에서 7년간이나 근무했던 사람이 고백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비자금 조성의 단서가 되는 증거도 제시되었다. 나아가 삼성이 고위직 검사들에게 정기적으로 떡값을 주며 관리를 해왔고,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에버랜드 형사사건의 증인과 참고인들을 조작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삼성 돈을 받은 판사 중에 현직 대법관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삼성이 주겠다는 돈을 거절했다는 추미애 의원의 인터뷰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우리사회의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그런 시장을 한국에서는 재벌이 지배한다. 그런 사회에서 재벌 중 최고의 재벌인 삼성그룹이 임직원 명의로 막대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은 소위 신정아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뉴스임에 틀림없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본연의 사명으로 추구하는 언론으로서는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할 임무가 주어진 상황이다.
삼성공화국이라는 용어가 시사하듯 삼성그룹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힘과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런 삼성그룹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최후보루가 되어야 할 법원과 검찰, 그리고 정치인 등을 상대로 돈로비를 했다는 의혹은 어찌 보면 지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라는 문제보다도 더 중대한 사안이다. 이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국기문란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관해 증언자격을 충분히 갖춘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도가 되고 있지 않다는 불만과 항의가 쏟아지고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김용철 변호사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선해하고 싶다. 그러나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신중한 양상을 보였으며, 어떤 언론의 경우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을 폄하하면서 “한국사회가 난장판이 되고 있다”는 식의 비상식적인 주장까지 하였다.
삼성그룹은 언론사 광고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중요한 광고주이고, 우리나라 언론의 경우 구독료보다 광고료에 주로 의존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독자와 국민만을 중심에 놓고 독립적인 언론활동을 전개하기가 쉽지 않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언론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였으되 시장과 자본권력으로부터는 독립하지 못하고 있음은 최근 신정아 사건과 시사저널 사태에서 상징적으로 확인된바 있다.
하지만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언론이 일개 필부나 자영업자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외환위기 이후 대다수 국민들의 삶이 불안정해지고 생존경쟁 스트레스가 가중되어왔는데, 대부분의 언론이나 기자들도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짐작은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론 본연의 사명이나 기자의 직업윤리마저 시장에 내다팔 수는 없지 않은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더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언론은 사법부와 더불어 자본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시장을 견제하고 1인 1표의 원칙에 의거하여 운영되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가치를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힘과 영향력에 맞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켜내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