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현실 반영…‘잘되면 한몫’ 심리도
윤리강령 등 내부 자정 시스템 마련해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최근 선거대책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산하에 40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언론·방송특보단을 꾸렸다. 신문, 방송, 통신사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데다 면면도 기자에서 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출신까지 다양하다. 이사, 부사장, 사장 등 고위급 간부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반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대선캠프에 합류한 현직 언론인은 없다. 권 후보 선대위 대변인실은 대변인 포함해 5명인데 모두 비 언론인 출신이다. 박용진 대변인은 “당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희망자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선택연말 대선을 앞두고 언론인들의 대선주자 캠프 합류가 부쩍 늘었다. 규모 면에서 역대 선거 사상 최대 인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는 40여명의 언론인들이 뛰고 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선대위에는 10여명, 문국현 후보 캠프에는 5~6명의 언론인들이 합류하고 있다. 각 지역에 따로 꾸려진 선대위에 가세한 지역기자들을 다 합치면 1백여 명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바야흐로 ‘폴리널리스트(politics+journalist)’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언론인들의 캠프 참여는 그 규모나 양태에서 전례가 없고 적극적이다. 대선캠프에 참여한 언론인들의 소속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KBS, MBC, SBS 등 다양하다.
이런 현상은 미래가 불안정한 언론계의 현실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IMF 이후 언론사 경영이 악화되면서 조기퇴직이 많아졌다. 수시로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40대 중반만 되도 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변상욱 CBS 대기자는 “IMF 이후 언론계 환경이 변하면서 평생직장 개념이 희미해졌고, 저널리스트의 자긍심도 옅어졌다”면서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대선캠프를 찾는 언론인들이 대거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베팅심리 기저에 깔려한편으론 ‘잘하면 한몫 크게 챙길 수 있다’는 베팅심리도 깔려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노무현 학습효과’라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도왔던 언론인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대선캠프에 줄서는 언론인들이 대거 늘어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언론계를 지킨 저널리스트는 구조조정의 위기에 눈치보는데 급급한 반면 노 후보를 선택한 언론인들은 공기업 이사, 감사, 사장으로 호사를 누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적잖은 언론인들이 환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언론인의 정치참여는 시대적 변화상을 반영한 것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캠프에 참여한 언론인들은 연설문 작성, 정보수집 분석, 대언론업무 등을 맡는다. 조선일보 사회부장 출신인 함영준 이명박 후보 언론특보는 “캠프의 속성상 정파적으로 판단하기 쉬운 사안을 중립적 견지에서 분석하고 조언하는 이른바 ‘캠프 내 야당’ 역할을 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 특보는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는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시대”라면서 “기자든, 교수든 직무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이 대선캠프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언론계 안팎 우려 어린 시선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들이 정치판으로 말을 갈아타는데 대해 언론계 안팎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대선캠프에서 언론인들을 끌어들이는 이유 가운데 대 언론 로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해당 언론인의 인맥, 선후배 관계 등을 활용해 최소한 악의적인 기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변상욱 CBS 대기자는 “선후배 인맥을 활용해 언론 보도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며 “특정 학맥으로 이뤄지거나 사주의 입김이 강한 회사라면 그럴 가능성이 짙다”고 말했다.
어제까지 현직으로 일하던 언론인들이 사표를 내고 곧바로 캠프로 출근하는 경우를 보면 금도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섰다. 특히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캠프 일을 돕다 후배기자에게 들키자 사표를 내고 정식으로 캠프행을 선언한 일도 있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땅에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의 이런 부도덕한 모습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는 주범으로 꼽힌다.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장은 “어느 날 갑자기 특정캠프로 옮긴 언론인이 그동안 쓴 기자나 칼럼에 어떤 독자가 신뢰를 보내겠느냐”면서 “개인의 이익을 좇는 기자들이 늘면서 기자직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기간 정치활동 규제 필요더욱 큰 문제는 남아있는 기자들에게 언론인 본연의 의무와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준다는 것이다. 선배들의 성공적인 변신(?)을 바라보는 후배들은 ‘나도 준비해야하는 것 아닌가. 미리 잘 보여야하지 않나’는 정체성의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박래부 한국일보 논설실장은 “‘권력 해바라기’가 어느 때, 어느 나라 경우보다도 한국 기자들에게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기자에겐 기자만의 원칙이 있다. 그걸 깨뜨리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때 기자들의 긍지는 내던져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에 참여하기 전에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만큼 최소한 냉각기는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인이 퇴직 후 일정기간 정치활동을 못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KBS처럼 윤리강령을 제정, 구성원들이 자율제재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KBS는 2003년 윤리강령 개정을 통해 언론인이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정치권으로 이동할 경우 6개월 전에 방송사를 떠나도록 규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