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썼다는 이유로 국가권력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뜻의 일명 ‘필화(筆禍)’ 사건에 대해 가해자인 국가정보원(전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이 ‘그런 일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솔직한 고백과 반성은 없이 소극적인 사실 인정에만 그쳤다.
국가정보원이 과거 중정과 안기부 개입을 인정한 5대 ‘필화’사건은 △<신동아> 차관 필화사건(1968년)과 △<사상계> ‘오적(五賊)’ 필화사건(1970) △<다리>誌 필화사건(1971) △<창조>誌 필화사건(1972) △<신동아><월간조선> 제작 방해사건(1987) 등이다.
국가정보원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진실위)>가 발간한 보고서 ‘과거와 대화·미래의 성찰 - 언론·노동편(V)’의 ‘중정과 안기부에 의한 언론통제 및 개입실태’ 부분에서, 위의 다섯 가지 ‘필화’ 사건에 대한 조사 내용과 평가를 게재했다.
보고서는 5대 필화사건을 중앙정보부나 그 후신인 안전기획부가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불법적인 수사와 공작을 벌였던 사건으로 규정했다. 해당 기사가 당시 실정법을 전혀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반공법(80년12월31일 폐지)과 언론기본법(87년11월11일 폐지) 위반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꿰맞추기식 수사와 물리력을 동원한 불법 수사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필화사건, 중정과 안기부의 불법 행위로 인정
보고서에서 국정원 진실위는 <신동아> 차관 필화 사건이 소위 ‘권언유착’ 형성의 계기라는 세간에 평가에 대해 “동아일보가 동 사건 이후 정부권력에 대한 비판기능 일부를 상실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극적 평가를 내렸다.
또 <다리>지 필화사건에 대해서는 “중앙정보부가 김대중 대통령 후보 견제를 위해 <다리>지를 탄압한 의혹을 뒷받침할 자료는 국정원 자료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그러면서도 “김대중 후보의 지지도 상승 저지 방안으로 김대중의 홍보기구 역할을 해온 <다리>지 관계자들을 구속했다는 주장은 개연성이 있다”고 밝혀 사실의 진위를 솔직하게 밝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한편 <창조>지 필화사건에 대한 평가에서는 “이 사건은 유신체제 선포 이전 박정희 정권에 비판적이던 언론은 물론이고 종교계까지도 통제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김수한 추기경을 연행하면서 ‘천주교인들을 친야적(親野的)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내용을 게재한 혐의’라고 밝힌 것은 반공법 위반혐의를 빌미로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과 인사들에 대한 압력과 통제가 주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국정원 진실위는 1987년에 발생한 <신동아><월간조선> 제작 방해사건에 대해서는 “정부가 언론의 상업적 폭로주의를 견제하려 했다는 주장을 타당성 있게 검토해야 한다”면서도 “<신동아>와 <월간조선>의 ‘이후락 증언’ 게재를 물리적으로 중단시킨 절차적 위법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 당시 안기부가 관행적으로 언론에 개입하고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간과했다는 비난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