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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6월22일자 기자협회보(제288호) 3면에 실린 리영희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글 '신문이 하나둘 사라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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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가 기자협회장에게 사퇴압력을 행사하고 기자협회보에 폐간 조치를 내리는 등 언론을 통제해왔다는 사실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 24일 드러났다.
국정원 과거사위에 따르면 중정은 기자협회보 1973년 6월22일자 3면에 실린 리영희 한양대 신방과 교수의 기고 ‘신문은 하나 둘 사라지는데…’가 실리자 당시 회장이었던 박기병회장과 기자협회보 정진석 편집장, 리영희 교수를 연행하고 사전검열을 받겠다는 서약을 받아냈다.
또 1974년 10월25일 기자협회가 민주언론수호결의 성명을 발표하고 1975년 3월8일 제351호 증면호를 통해 조선일보 경영진의 무더기 기자 파면을 보도하자 이틀 뒤인 3월10일 ‘신문․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을 들어 기자협회보를 폐간 조치했다. 이유는 기자협회가 법정 시설기준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중정은 1973년 7월 문건에서 이미 “기자협회주보 발행시는 인쇄시설을 구비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적 절차에 따른 정당한 허가없이 불법으로 발간하고 있다”고 적시해 둔 상태였다.
중정은 또 1975년 4월24일 제13대 기협집행부였던 김병익 회장과 백기범 부회장 등을 국가모독죄로 연행, 구속하겠다고 위협해 집행부로부터 사퇴의사를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기자협회가 기자협회보 폐간을 IFJ(국제기자연맹)에 알리고 IFJ가 이와 관련한 항의서한을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 보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밖에 1979년 9월21일 정성진기협회장이 0.5캐럿짜리 다이아 반지 1개를 밀수했다고 몰아 자진 사퇴를 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정은 기자협회의 동향을 문건으로 세세하게 기록했으며 친야 성향의 기자들은 요주의 인물로 구분, 철저한 견제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남기기도 했다.
다음은 보고서의 일부다.
| “기협회장 피선 후 언론자유기자 처우개선 노골적 주장”(1979년 4월19일) “기협회보 제400호 기념 특집에 문제인물 한완상, 송건호, 김병익 등에 언론자유촉구 기고문 게재”(1979년 6월6일) “기자협회실에서 회장단 회의를 소집 최근 경향, 조선, 중앙 등 일련의 언론계 소요사태를 기협회보에 게재함에 있어 외부는 물론 해당 신문사 회원들까지도 삭제하라는 압력이 가중되는 것에 반발, 사의 표명”(1979년 7월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