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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당시 전 국회의원) 납치사건을 보도한 1973년8월10일자 동아일보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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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가 김대중 납치사건이 발생한 이후 보도지침과 사전 검열을 통해 관련 소식이 유포되는 것을 차단하고 외신을 조정하는 등 기획된 언론통제를 했다는 사실이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 조사결과 드러났다.
24일 국정원 과거사위에 따르면 중정은 김대중이 서울로 압송된 1973년 8월13일 이후 기획된 언론통제에 들어갔다. 중정은 김대중 사건 기사에 대한 보도지침과 사전 검열을 받도록 조치했다.
중정은 8월15일 작성한 문건에서 “전체적으로 기사를 축소시키도록 하고 특히 동판(컷)으로 제목을 부각시키는 것을 일절 배제토록 했다. 방송도 KT사건 특집방송 뉴스해설 및 외신인용보도 등은 일절 관제조치했다”며 조치현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8월16일 문건에서는 “강력한 언론보도통제를 가해 국민들의 관심이 점차 KT사건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유도한다. 민심을 타방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대행사(예: 공산권 초청경기 등)를 개최하여 밝은 기사(예: 대농작황, 국제경기 개최 등)를 집중 보도토록 한다”면서 보도지침을 내리는 수준을 넘어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중정의 이런 언론탄압은 결국 외신과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중정은 8월23일 요미우리신문이 ‘정보부 기관원이 사건에 관계-한국정부측 인정한다’고 보도하자 정정기사 게재를 요구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요구를 거부하자 서울지국을 폐쇄하고 특파원 3명의 퇴거를 명했다.
일본정부로부터 외교적 수세에 몰린 박정희 정권은 언론을 활용해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반일 정서를 부추겼다.
‘복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해 9월3일 작성된 문건 중 언론관련 대책을 보면 “일본 참의원 본회의 대정부 질의과정에서 주권논쟁과 관련된 자극적인 기사 위주로 사실보도. 방송 TV 등 매스컴을 통해 저명인사에 의한 일본측 주권침해에 대한 논거 해설” 등을 거론하며 언론을 통한 반일 여론 조성에 나서고 있다.
외신에 대한 조정과 함께 중정은 국내에서도 지속적인 언론조정을 실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9월25일 작성된 ‘김대중 사건 국회 질의에 따른 언론조정’ 문건에는 “지난 9.29일부터 3일간 국회에서 대일본언론 및 일부정치인의 반한국적 태도와 김대중의 반국가적 해외행각에 대한 폭로공세로 일관했는바 치밀한 계획과 신축성 있게 대처해 이를 성공적으로 유도했다”며 주요 조정실적이 나와있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보도지침을 통해 일상적으로 언론통제에 개입한 중앙정보부가 김대중 납치사건에서는 기획된 언론통제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김대중의 일방적 언동과 기자들의 무절제한 추측기사 보도 방치는 국가 안보문제와 관련이있는 만큼, 8.14 23:00을 기하여 계획적이고 강력한 언론통제를 실시…각 언론기관에 대해 김대중 사건 기사는 사전 검열을 받도록 조치했음” (1973년 8월 13일 중앙정보부 작성문건)
“일간신문 1면에 대서특필로 게재했던 KT(김대중)사건관련기사를 조정지침에 따라 금 8.15부터는 사회면으로 취급하되 김대중 중심의 기사를 지양하고 수사상황 위주로 게재토록 조치하여 전면적으로 지면이 조정되었음(동아, 중앙은 1면 축소)” (1973년 8월15일 중앙정보부 작성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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