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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6주년 기념 방담-술자리서 그려본 기자 자화상

'소속회사 틀에서 벗어난 대한민국 기자이고 싶다'

정리=김상철/박주선  2000.11.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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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반향 느낄 때 ´으쓱´

자사 이해관계로 뉴스 춤출 때 제일 더러워





애초 기자협회 창립 36주년을 맞아 묵직한 현안을 주제로 삼을수도 있었다. 안팎의 변화 요구는 물론 기자와 언론을 둘러싼 쟁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기자협회 편집국은 ‘요즘 기자들의 사는 풍경’이 궁금했다. 기자들은 무슨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친김에 TV에서 흔히 하는 ‘토크’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지난 9일 오후 1시, 어떤 주제로 얘기할 지도 모르면서 편집국의 호출에 순순히 응한 5명의 기자들이 무교동 어느 중국집에 모여들었다. 지방기자 1명은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종합지, 경제지 기자와 방송기자 등이 골고루 한자리에 앉았다. 역시 기자들…. 입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세 시간이 흘렀고 빈 고량주병은 이배수로 늘어갔다. 첫 얘기는 ‘왜 기자가 됐나’로 시작했다.



기자 입문 동기도 가지각색

-대학교 때 학보사에서 기자활동을 하면서 ‘기자도 괜찮은 직업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자 월급도 많이 높아졌잖아요. 월급도 많고 직업도 괜찮아 보이고,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 때는 PD 지망생이었는데 신방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받으면서 어찌 하다보니 기자가 돼버렸네요.

-학교 다니면서 교지에 글도 많이 썼고, 졸업 후에도 글쓰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외과에 다니면서 정치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한 젊은 정치인이 일찍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보고 포기했어요. 생각해 보니 사회 참여적이면서 글쓰는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이 기자더라구요. 하지만 첫 발을 디딘 매체가 원하던 곳이 아니어서 크게 실망하고 언제라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다보니까 의외로 보람도 있고 자부심도 생기고 새로운 매력도 찾을 수 있었어요. 몇 년 전에 등단하면서 글쓰기도 병행하고 있는데, 요즘엔 기자 일이 내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하죠.

순간 한 켠에서 “원래 기자가 소설가 아니야?” 한다. 터져 나온 웃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행복하다는 기자가 말을 받았다. “소설에 대한 모독이지.”

“맞아, 맞아” 하며 다시 웃음이 터졌다. 술잔이 돌고 얘기가 이어졌다.

-나? 나야 언론 개혁하러 왔지. 농담이야. 사실은 얼떨결에 기자가 됐어. 원래는 역사 공부하려고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친구중에 기자 녀석이 있었는데 그 친구 말 들으면 오로지 기자가 최고인 거야. 그래서 ‘한번 시험이나 봐보자’ 했는데 합격하게 됐고, 유학은 바로 취소했죠. 지금은 기자가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기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신방과에 입학했고. 월급쟁이보다는 조금이나마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거든. 솔직히 지금은 그런 생각들 많이 잊고 살지. 오히려 생활인이 된 것 같아.



전문기자 부족, 회사 탓 커

얼떨결에, 월급이 많아서, 신방과를 졸업하다 보니, 글을 쓰고 싶어서 등등 기자가 된 사연들은 조금씩 달랐다. 이 정도면 무겁지 않게, 무난하게 ‘토크’의 분위기를 잡아간다고 생각할 즈음 준비된 것도 아니었는데 한 기자가 ‘예전 같지 않다’면서 전문성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말은 꼬리를 물었고 ‘아차’ 싶었지만 이미 이야기는 전문성을 주제로 저만치 나아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내가 기자라서 정보에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정보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요즘은 어디가나 말발이 안 서요. 모든 분야에서 그 분야 종사자들보다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거든. 이슈를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기자들이 이제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시류에 맞게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거죠. 결국 기자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언론사 인사 탓이라고 생각해요. 이러 저리 옮겨 다니기만 하니 제대로 아는 분야가 없는 것 같아 영 찜찜합니다.

-저는 좀 다른데, 기자는 전문가가 되려는 자세만 있으면 되지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이고 그렇기 때문에 기자들에겐 지식보다 사안을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물론 전문성이 석사, 박사를 말하는 건 아니지. 사회를 해석하는 능력이 전문성이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에는 주류(酒類)만 담당하는 기자가 있다는데, 그 기자는 수 년 동안 술에 관한 기사만 써왔대요. 일본 유통신문의 백화점 담당기자는 백화점만 30년을 담당해서 그 분야의 발달사, 산업사를 다 안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런 전문기자가 드물잖아요. ‘전담기자’만 있을 뿐이지.

-맞아. 회사 태도는 한 분야의 전문가를 키우는 게 아니라 그냥 ‘한 사람이 계속 한 부서에 있어라’이런식이라니까.



기자는 대충 무식해야 한다?

대화는 그렇게 전문기자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조어(造語)능력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직종답게 기자들은 전담기자라는 말로 전문기자제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한 번 터진 말은 끝을 봐야 했다. 이번엔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논쟁이다.

-전문기자제는 잘 생각해야 할 문제야. 취재원들을 만나면 그 사람들이 많이 아는 것 같아서 기죽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문성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 우리는 제너럴리스트이니까 그 사람의 의견에 대해 판단할 수만 있으면 된다고.

-전문기자제의 문제점은 인력 양성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데 있어요. 사건 전담 기자라면 언론사가 제일의 학교지만 예컨대 국제 금융이라면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소양을 쌓기 힘들잖습니까. 그렇다면 제너럴리스트로 훈련받은 기자들이 나름대로 다른 사람이 돌아보지 않는 분야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사내에서 지원을 해줘야죠. 당연히 전문성에 걸맞은 대접도 있어야하고.

-외부에서 볼 때 언론은 전문직입니다. 우리 스스로 폄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아는 한 박사 출신 교수는 기자 되고 싶어 안달이에요. 교수 돼서 좋은 논문 써봐야 기자들이 기사 한 줄 안써주면 아무 소용없다는 거야. 하지만 그 박사들이 기자 된다고 해도 실전 경험이 있는 기자들보다 맛깔스런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거거든. 유식한 사람들은 ‘이 정도는 다 알겠지’ 하면서 일반인에게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기자들은 대충 무식해야 한다’는 선배들의 얘기가 틀려 보이지 않아요.



자기중심적 후배들 보면 씁쓸

결론이 날 논쟁도 아니었고, 예정에도 없던 주제라 얘기를 돌려야 했다. 한참을 듣다가 준비된 질문을 다시 던졌다. 모두들 기자 생활 10년을 넘기다 보니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 이래저래 세대차이를 느끼고 있을 터였다. 이른바 신세대 후배들이 그들에겐 어떻게 비춰질까. ‘부르주아’, ‘기능은 탁월한데…’ 이내 경험담을 털어 내며 속내를 보였다.

-초년병 땐 사회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을 일 주일 동안 취재하고 기사 하나 만들면서 ‘기자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희열을 느꼈거든요. 물론 내 기사가 나가서 사회가 크게 변한 것은 없었지만 당사자들은 내가 구세주인 양 고마워하고찾아와서밥도 사 주고 그랬죠. 정말 그 때의 보람과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요즘 후배들 보면 부르주아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대학 출신도 많고 대부분 부유층이더라구. 일본어, 영어로 농담하는 걸 보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물론 경쟁력으로 따지면 우리보다 훨씬 낫겠지. 근데 그런 후배들에겐 사회의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는 따뜻한 눈이 없어. 날카롭지도 못하고, 웬만하면 기사가 안 된다고 무시해 버리고, 사회의 구석진 곳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니까.

-90년대 중반부터 신입기자들의 문화가 조금씩 달라진 것 같은데, 후배들은 선배들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많지만 집요함이 없어 보여요. 문제 의식을 갖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없거든. 남들 다 떠나가도 조금 더 늦게까지 현장을 지키는 게 기자인데….

-처음 입사했을 때는 복사 심부름을 시켜도 그거 빨리 하려고 후다닥 뛰어다니고 좀 더 잘해 보려고 성능 좋은 아래층 복사기로 내려가고, 그래도 그걸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았어요. 기자가 되려면 그런 허드렛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배울 수 있었고 말이죠. 요즘 후배들은 대체로 전체를 배려하기보다는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는 것 같아요. 며칠 전 막 수습딱지를 뗀 후배 셋과 술을 마시러 갔는데 다들 술 못 먹는다고 안 먹더라고. 좀 섭섭했지. 우린 예전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옛날에는 선배보다 먼저 퇴근하거나 회식에서 일찍 자리를 뜨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잖아요. 요즘은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기자들이 7시면 먼저 퇴근하겠다고 나가버려요. 그 만큼 자기 중심적이 되어 간다는 얘기죠. 어학이나 컴퓨터 같은 기능적인 면은 선배들보다 뛰어나지만 따뜻한 가슴은 부족해 보여요. ‘젊을 때 하다가 아니면 딴 데 가지’ 하는 생각도 많고.



내가 쓴 기사 빠지면 무력감 느껴

역시나 후배들을 보는 눈은 ‘우리는 예전에 안 그랬는데’가 많았다. 너무 ‘매도’ 일변도로 간 것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솔직한 토로만큼이나 깊은 애정과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화제를 바꿔 기자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냐고 물었다.

-오래 전 중소기업을 출입할 때 사귀었던 사장과 한 달 전에 술자리를 했어요. 내가 출입할 때만 해도 구멍가게 만한 회사였는데 이제는 많이 커졌다고하더라구. 술한 잔 하는데 내 일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그런 사람을 사귈 수 없었겠죠.

-아무래도 기사에 대한 반향이 있을 때 보람을 느끼죠. 반대로 내가 쓴 기사가 빠지게 될 때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거의 매일 ‘못해먹겠다’생각

얘기를 더 들었어야 했는데 무력감이라는 말에 ‘그렇다면 기자하기 정말 더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언론사 경영과 인사, 기자 사회에 대한 쓴 소리가 쏟아졌다.

-솔직히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생각하는 건 거의 매일이죠. 어느 날 무능하기로 소문난 차장 하나가 부장이 됐는데 알고 보니 충실한 ‘회사 홍보맨’의 길을 밟아 왔더라구. 정말 그럴 때면 기자 하기 싫죠.

-유능한 기자가 출세한 경우 별로 보지 못했어요. 줄 잘 선 기자들이 경영마인드 있다고 평가받으면서 잘 나가지. 결국 기사로 평가받지 않고, 경영마인드로 평가받는다는 얘기 아닙니까. 조직 내부의 정치논리에 의해 기자들이 평가받거나 사장(死藏)되는 건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직계 선배이자 교수인 분이 계신데 나한테는 기자라고 높임말을 써요. 어떤 유명한 소설가도 기자님이라고 부르고. 기잔데 어떻게 반말을 쓸 수 있냐고, 기자만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직업도 드물다면서 말이죠. 외부에서는 이런 평가가 많은데 내부 기자들은 이런 기대치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특히 회사 이해에 따라 기사 판단하는 경우가 빈번하잖아요. 그럴 때면 내가 심부름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자부심도 떨어지죠.

-우리 회사나 주주의 이익과 배치되는 기사를 쓸 때가 종종 있는데, 처음엔 중요기사로 올라갔다가 최종적으론 결국 빠져버려요. 기사를 빼라는 경영진의 지시가 떨어지면 어떤 부장은 솔직히 얘기하기도 하고 어떤 부장은 아무 말 없이 기사를 빼기도 합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연조가 높아지다 보면 자기 검열이 강해질 수밖에 없어요.

-아무튼 기자들이 너무 자사 홍보맨이 되어 가고 있어요. 회사 행사와 홍보 기사도 많아지고, 자사 문제가 발생하면 또 너무 흥분해. 기자 월급은 한 신문사에서 받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기자거든요. 소속사가 아니라 전체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일 열심인 사람 기억에 남아

경영진에 대한 불만, 인사 문제, 무엇보다 자사이해에 물든 모습들… 회사와 동료들혹은 스스로를향한 비판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씁쓸한 분위기 속에서도 마지막 기자의 말에 모두들 ‘그래, 맞아’, ‘좋은 말이야’ 하며 맞장구를 쳤다. 소속사의 틀에서 벗어난 ‘대한민국 기자’라는 연대의식과 자부심. “우리는 대한민국 기자이고 싶다.” 제목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바탕 불만과 비판이 쏟아지는 동안에도 차례를 기다리는 질문이 많았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인 기자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 보면 기억에 남는 기자나 취재원도 있었을 것이다.

-기자정신이 있는 사람과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 두 유형의 동료가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간지 편집을 맡는 한 기자는 제목 하나 뽑는데 한 시간을 고민해요. 레이아웃 그리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예술가 같다니까. 편집도 뛰어나고 일상에서는 겸손하기 그지없거든요. 그런 사람을 보면 일 하는 사람으로서 존경심이 생겨요. 함께 일하는 오퍼레이터 한 사람도 기억에 남는데, 언제나 기사를 꼼꼼히 읽고 제목과 본문이 일치하는지 확인을 하거든. 그 친구를 보면서 일하는 자세에 대해서 배우죠.

-기억에 남는 기자라면, 11년 전 조서에 피해액이 56만 원으로 기재된 사건이 있었는데 그러면 기사가 안 된다고 560만 원으로 고쳐서 보도하는 기자들을 봤어요. 반면교사로 기억에 남는 일이었죠.

-취재원 중에 괜찮은 사람들이 꽤 많은데 출입처를 자주 옮기다 보면 그 사람들과 만남이 일회성으로 끝나버려요. 게다가 지금이야 친하지만 기자 일을 그만두게 되면 끝나버릴 관계들도 많잖아요. 일을 떠나서도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가죠.

-조용히 아이디어를 주는 취재원이 좋습니다. 거기에서 아이템을 얻는 경우가 많거든요. 트렌드 위주의 기사를 쓰다보면 비슷한 중량의 회사들을 접하게 되는데 적극적인 취재원들이 있는 회사를 아무래도 더 배려하게 돼요.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취재원이고 가벼운 기사란 없어요. 편집되면서 톱, 박스, 1단 등으로 분류되는 것이지. 취재원을 만나면서 경중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물론 취재원을 대할 때 기술적이고 전략적일 필요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취재원은 우리 고객이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취재원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좋은 지면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 특권의식 버려야 할 문화

전담기자와 전문기자, 보람과 좌절,취재원과의 관계 등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렇다면 이런 말들의 한가운데 서있는 기자, 기자사회는 과연 어떤 색깔을 가진 집단일까? 기자사회와 문화에 대해 얘기해보기로 했다.

-기자들끼리 있으면 사회 현안, 일상 생활 등등 말들이 끊이지 않잖아요. 심심할 수가 없는 동네죠. 그래도 아직 기자사회는 부끄러움을 아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지면에 어떤 문제 의식을 담을까’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반 회사에서 동기들이 회사에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건 어려운데 언론사에서는 가능하죠.

-그건 언론사의 기수문화 때문이 아닐까? 언론사의 기수문화는 단점도 있지만 나름의 상징성이 있지.

-IMF 이후 기자 이동 등으로 회사가 어려웠을 때 조직을 살렸던 건 공채 기수들의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기수문화가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그때는 신문사를 지탱하는 힘이 됐던 거죠.

-기수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모이지 말고 회사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해요. 그 속에서 공채기자, 경력기자, 전문기자가 균형을 맞춰 조화를 이룬다면 최고의 조직이 될 거라구. 전문기자는 깊이를 보고 공채는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고 경력 기자는 타사의 문화를 도입하는 역할을 하면서 말이지.

-언론사 문화의 단점이라면 기자들이 허장성세가 심하다는 게 아닐까. 비단 개인의 품성 때문이 아니라 기자사회 내에 자기 파워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풍토가 있어요. 얼마 전에 모 기자가 자신이 은행장 인사를 좌지우지한다고 하자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걸 봤는데, 이런 분위기에 젖어드는 것은 스스로 경계해야죠.

-기자들의 특권의식은 마지막으로 버려야 할 문화인 것 같아. 촌지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고 있지만 특권의식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거든요. 요즘 사이버 문화가 기자사회의 특권의식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는 하지만.



초년병 시절의 초심 견지해야

기자집단을 이야기하는 동안 결국 시간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폭탄주 문화’, ‘데스크 이럴 때 꼴 보기 싫다’, ‘기자라서 힘든 가정생활’ 등등 질문 하나라도 더 할까 고민하다가, 아쉽지만 한 마디씩 하고 싶은 말을 끝으로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기자들이 틀에 박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뒤집어 보고 기성 가치를 깨볼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나부터도 현상유지에 급급한 느낌이야.

-선배들도 자신이 평생몸담았던 언론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지 고민해야 합니다. 자아비판도 필요하지만 후배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줘야죠.

-기자라는 직업 자체가 공동의 선을 찾으려는 직업 아닌가요. 언론계 내부의 변화에 대해서도 손가락질만 할 게 아니라 바람직한 길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사 쓰는 일은 오픈북 테스트란 생각이 듭니다. 훌륭한 기자란 특종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에 널려있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초년병 시절의 초심을 견지해야겠죠.

오후 4시가 훌쩍 넘어선 시간, 기자들은 마지막 한 마디를 뱉어놓고 너도나도 “마감 때문에…” 라며 줄줄이 자리를 떠났다. 마감은 이들이 여전히 같은 기자임을 확인시켜주는 마지막 끈 같은 것이었다. 빈 자리를 추스르며 일어서는데 준비된 질문 하나가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기자와 폭탄주.’ 텅 빈 고량주 병들이 왠지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폭탄주에 산화한 들 어떠랴, 저 인간들은 역시 저녁에 만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