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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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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운이었다.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 사건을 ‘건진’ 것은.
8월 8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 발표 이틀 뒤인 8월 10일 오후 3시30분경.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엔 A4용지 한 장짜리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정 전 비서관이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교체된다는 내용.
청와대 출입기자가 된 지 한 달 반 밖에 되지 않은 ‘신참’에겐 모든 게 궁금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의 외교 일정과 절차를 전담하는 의전비서관이 교체될 수 있을까. 천호선 대변인의 설명은 이랬다. “부산 신라대 객원교수로 가게 됐거든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청와대 ‘부산파’ 중 대선과 총선에 참여할 참모들의 거취는 8월 3일 비서관 인사로 정리가 됐다. 청와대 내에선 마지막 ‘부산파’인 정 전 비서관은 10월 초 부산으로 낙향할 것이란 소문과 함께 ‘부산파’의 맏형격인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 ‘왜 빨리 귀향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월 30만원의 월급을 받는 객원교수 보다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기획하고 방북단에 포함되는 의전비서관이 더 욕심나지 않을까.
부산지검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와 함께 정 전 비서관에 대해 물었다. 난데없이 부산국세청장이 튀어나왔다. 인터넷에서 뉴스 검색을 했다. 정 전 비서관이 사표를 내기 하루 전인 8월 9일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이 구속됐다는 사실과 정 전 청장의 혐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정 전 비서관이 문제의 업자를 소개시켜준 것인지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퍼즐 맞추기’ 작업의 결과는 검찰의 재수사,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약속까지 이어졌다.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게 했다는 것, 그것이 기자의 역할이란 생각에 짜릿할 뿐이다.
정 전 비서관이 세 차례나 강력히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수진’을 믿고 기사 게재를 허락해주신 정치부 선배들, 제 기사로 인해 부산에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사회부 후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아울러 5월 말 출산 휴가를 마친 뒤 전주 친정에 떼놓고 온 아들 인준이에게도 속삭여본다. ‘나쁜 엄마 아니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