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의 장은 이미 현대 민주주의 전개과정의 우뚝 선 제도로 존재한다. 언론현상은 뉴스발생 당사자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의 차원이 아니라 모든 사회현상의 수용과정에서 필수적 통과절차이다. 언로는 폭포처럼 콸콸 흘러야 마땅하다. 한데도 시대착오적인 기자송고실 폐쇄, 브리핑룸 통폐합, 자유로운 공무원 면담취재 봉쇄, 기자 취재활동의 사전 파악 등의 취재제한이 계속되고 있다.
취재환경을 악화시키는 ‘선진화’ 미명의 통제방침은 설득력 있는 논리도 부실하다. 졸속추진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차기정부에서 어차피 철거될 ‘언론통제 방안’에 힘을 쏟느라 국가경영의 시너지가 발휘되지 못하고 헛된 낭비로 이어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16일 서울지방경찰청 출입기자단의 기자 통제조치 전면거부 성명을 시작으로 20일 노동부 외교통상부 건설교통부, 22일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24일 재경부 교육부 등 기자단의 항의와 철회요구 연쇄 선언이 이어졌다.
총리실 행자부 통일부 교육부 출입기자단도 동참했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언론인연합회 대한변호사협회 등도 성명서 결의문을 내었다. 온통 옳지 않다고 지적하며 마다하는데 정책 집행력이 제 힘을 발휘하겠는가. 정치권도 전부 한목소리로 비판한다. 야당은 예산집행을 저지하겠다고 나선다. 나라의 힘을 낭비한 오류의 대가는 심대하다.
‘언론의 천국’ 미국 연방헌법 수정 제1조는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청원의 권리를 단순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연방 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법률 구성 자체를 원천 금지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여 미국에서는 언론관계 법률이 없다. 시민사회의 양식이 상식으로 이어지고 자유언론의 상식은 사회적 진리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시시콜콜하게 총리 훈령으로 다듬고 있는 참여정부의 번문욕례와 대조가 된다. 만들어 번거로운 것보다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것이 상책의 길이다.
사회환경을 감시하고 정책 집행 과정의 공과를 따져보는 것은 언론의 기본 임무이다. 투명한 참여정부가 되겠다고 천명한 노무현 정권은 언론을 공생 공존의 파트너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기자의 혼은 가두리양식장에 갇히지 않는다. ‘통합독서실’같은 밀집공간에 몰아넣고 받아쓰기를 강요한다 해도 피 끓는 수천 명의 현장기자는 정권의 의도대로 순치되지 않는다. 홍보처를 중심으로 아무리 정책정보를 통제 관리한다 해도 다음날 수십 페이지의 지면과 저녁종합 방송뉴스엔 기자의 앵글과 날카로운 시선이 관철된다.
언제까지 기자들이 마다하는 ‘대못질’사태를 질질 끌고 갈 것인가. 이 방안의 수요자인 기자들이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데 공급자의 논리만 들이댈 것인가. 지금이라도 노정권은 기자들의 정보 접근권과 취재동선(動線)을 자유롭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취재반경이 좁혀지는 사태를 어느 기자가 반길 것인가.
이제 정부는 한국기자협회와 다시 마주앉아야 한다. 진정 정책담당자와 언론이 공존의 두 축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한다면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이 유발한 혼선은 쉽게 정리될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해보라. 대화와 소통은 개방과 확장을 불러올 것이다. 본보는 다시 한 번 노 정권에 당부한다. 지금 당장 한국기자협회와 다시 마주 앉아라. 노 정권은 이를 통해 정권 말미에라도 언론에 격려받는 마무리의 미학을 성취하길 바란다. <편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