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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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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5일 오후 한국인 13명이 탄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졌고 당직자였던 나는 바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캄포트에 차려진 사고대책본부 주변을 스케치했지만 대책본부 내부 접근은 금지돼 있었다. 기체가 어디로 떨어졌는지, 생존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주변을 살피는데 군 차량이 지나갔다. 카메라, 노트북 컴퓨터, 전송장비를 짊어진 채로 무작정 달려 뒤를 쫓아갔다. 3백m 가량 달리던 차량이 멈춰선 곳은 헬기 이착륙장. 외신 기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다음날 아침, 헬기 이착륙장에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현지인 한명이 뭔가가 발견됐다는 귀띔을 해 줬다. 추락한 기체가 발견된 것 같다. 현장에 갈 방법을 수소문했다.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밀림에서 현장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군 수색대를 쫓아가는 길뿐이다. 군 당국은 취재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승강이를 벌이면서 겨우겨우 군 헬기에 올라탔다.
힘겹게 도착한 추락 현장의 모습은 예상보다 훨씬 처참했다. 한국인 13명이 여행길에 참변을 당했으니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한국으로 현장의 모습을 전해야 했다. 한참 취재를 하고 전송하고 있을 때쯤 뒤늦게 외신 취재진이 도착했지만 자국민이 아니라 그런지 십여 분 찍더니 금방 철수해 버렸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 소식과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수색대와 자원봉사단은 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들의 여권과 유품들을 하나씩 들어보였다. 셔터를 눌렀고 위성장비로 바로 전송했다.
수색대는 시신을 수습해 프놈펜까지 헬기로 운송했고 분향소가 마련된 병원까지는 앰뷸런스로 이동했다. 노란색 비닐에 싸여 있는 사망자의 옷 속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영영 받지 못하게 된 휴대전화. 사고가 난 지 어느덧 한달을 훌쩍 넘겼지만 그 벨소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추락 현장을 발견해 희생자의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보내기까지 내내 사고 현장과 함께 했던 짧고도 긴 그 순간들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