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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아래 기자로 살아가는 법

장우성 기자  2007.07.11 15: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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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 쓰기조차 불편한 ‘취재지원시스템선진화방안’. 이 골치 덩어리가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지 한 달이 넘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시간 동안 유달리 많은 동료 기자들이 쓰러졌다.

KBS 조종옥 기자, KBS 원주방송국 안성수 기자, 강원도민일보 유호일 기자.

조 기자와 안 기자는 뚜벅뚜벅 레테의 강을 건넜다. 수많은 가슴에 슬픔의 호수를 파놓은 채 그렇게 떠나갔다. 유 기자는 존재와 무의 국경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 이기리라’라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을 떠올린다. 그의 생환을 오늘도 간절히 소원한다.

누구보다도 성실한 기자들이었다. 누구보다도 따뜻한 선배이자 후배였다. 우리는 저 깊은 곳에서 울컥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게 된다.

더욱이 모든 기자들이 비양심적인 특권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안팎의 현실이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초과근무에 시달리면서도 공익방송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목숨을 걸었던 조종옥 기자. 항상 선후배들과 함께 넉넉한 정을 나누기를 좋아했다던 안성수 기자. ‘언론은 강한 악자를 혼내주고 힘없고 선량한 사람을 대변해야 한다’는 올곧은 언론관을 평소 강조했다는 유호일 기자.

이들도 그랬을까. ‘죽치고 앉아서 담합’하거나 ‘비양심적 보도’를 하거나,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렸을까. 모르긴 몰라도 청와대 어느 비서관의 자기변호처럼 ‘생활인’으로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이들은 어쩌면 우리 시대 기자의 자화상이다.

이런 아픔과 ‘취재지원시스템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불협화음을 지켜보면서 ‘불신’이라는 말을 항상 떠올리게 됐다. ‘건전한 긴장관계 확립’이라는 대통령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정부와 언론은 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해도 서로 신뢰하기 힘든 관계가 돼버렸다.

네메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에 사로잡혔을까. 정부의 언론에 대한 독설이 계속됐던 참여정부 4년이다. 처음에는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는 더욱 몰아세웠다. “너는 참여정부 편이냐 아니냐, 개혁이냐 반개혁이냐”라고.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고, 천하에 없는 고약한 집단으로 일반화돼버린 조종옥과, 안성수와, 유호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기자들의 몸과 마음은 거듭되는 생채기에 딱지조차 앉을 여유가 없었다. ‘참여정부 아래서 기자로 살아가는 법’은 쉽지 않았다.

기자들에겐 아직도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진정 기자들이 필요한 진실의 바다로 달려가야 한다. 열정을 헛되이 소비시키는 증오의 쳇바퀴는 이제 멈춰져야 한다. 정부는 진심어린 치유의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백가지 정책보다 앞서서 욕심내야 할 일이다. 참언론의 자유가 물결치는 세상을 바란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