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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보여주지 않아도 모두 눈시울을 적신다"

정호윤 기자  2007.07.04 15: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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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캄보디아 비행기 참사의 경우에도 어김없이 취재 지시가 내려졌을 것이다.

“A기자는 사고 원인에 대해 취재하고, B기자는 현지 반응과 정부 대책을 맡아라. 그리고 이전에 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C기자는 ‘유족들의 슬픔’을 보여줘라.”

데스크의 취재지시를 의미하는 용어, 이른 바 총을 맞은 C기자는 내키든 내키지 않았든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댄다. 유족들이 오열을 하면 할수록, 설령 그들이 슬픔에 복받쳐 실신이라도 한다면 더욱 생생한 장면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언론이 바라는 생생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버지니아공대 총기사고에서도, 잊을만하면 되풀이되는 국내외 참사에서도, 아니 매일매일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의 종착지인 병원 영안실에서도 이같은 관행은 되풀이된다.

13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캄보디아 비행기 추락사고.
유족들의 슬픔은 지시 받은 기자들에겐 이번에도 빼놓을 수 없는 ‘취재거리’였다.

살아있을 거란 실날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출국길에 오르는 유족에게 일부 언론은 ‘소감’묻기를 주저치 않았다.

실종자의 블로그를 찾아 가족사진을 퍼 날랐고,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현지 빈소를 배경으로 그럴 듯한 스탠드업(현장을 뒤로 한 기자의 리포팅)을 연출하기도 했다.

극도의 슬픔으로 눈물조차 메마른 눈에는 카메라가, 갈라진 입술에는 마이크가 어김없이 자리한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슬픔’보여주기에 혈안일까.
필자는 사건 기자 시절, 사고 유족들의 인터뷰를 해오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고 한참을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울부짖는 그들에게 마이크를 갖다댄 뒤 주변사람들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었을 때는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언론보다 돋보이겠다는 ‘과욕’이 ‘경쟁’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이제껏 우리 언론은 그런 ‘주저함’을 ‘무능함’으로 쉽게 낙인해버렸다.

‘승리’를 위해서 아니 ‘낙종’을 하지 않기 위해서, ‘인정’ 따위는 허용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영국 BBC 서울지국의 김성진 리포터는 “외국은 원칙적으로 유가족이 오열하는 참사 현장에서 인터뷰를 시도하지 않는다. 물론 카메라를 들이대는 경우도 없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취재진 스스로가 기자이기 이전에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는 감정체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사고 슬픔 보여주기가 데스크의 ‘총’에서 벗어나는 그 날.
우리 시청자와 독자들은, 또 울고 있는 유족들은 언제쯤 그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