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3월 ‘남선경제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창간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8월 대구매일신문으로 제호를 바꾸고 가톨릭교회가 운영권을 인수하면서 매일신문은 안정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매일신문 출신 유력 언론인으로는 국제언론인협회(IPI)가 선정한 20세기 세계 언론자유영웅 50인중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된 최석채 선생이 꼽힌다.
최석채 선생은 매일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내는 동안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 등을 통해 자유당 독재에 당당히 맞서 매일신문의 기상을 드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0년대와 60년대 서울과 부산, 경남 일원으로 배포권역을 넓히기도 했지만 5공화국 이후 대구·경북과 경남 서북부지역으로 범위가 축소됐다. 지금은 대구 본사를 중심으로 서울에 지사를 두고 경북 포항, 구미와 안동에 3개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발행부수는 일일 30만부 내외로 대구와 경북이 6대 4의 비율이다. 한 때 직원이 5백명을 넘기도 했으나 IMF사태를 거치면서 몸집이 많이 줄어 지금은 3백여명 가량이다. 이 가운데 편집국 소속 직원은 1백32명, 부장급 이상 논설위원까지 포함해 기자직은 1백17명이다.
매출 규모는 연간 5백억원 내외로 광고매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순익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석간인 매일신문은 32면 발행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밖에 타블로이드판으로 화요일엔 교육을 다루는 ‘하이스터디’ 수요일엔 ‘하이한자’ 목요일에는 전통 있는 생활정보매거진인 ‘라이프매일’등을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또한 금요일에는 급증하고 있는 논술 수요 충족을 위해 격주로 ‘하이논술’을 배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