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저널리스트회의(Japan Congress of Journalists·JCJ)
‘평화와 자유 수호’ 정신 아래 탄생
“다시는 전쟁을 위해서 펜을, 카메라를, 마이크를 잡지 않겠다.”
올해로 52주년을 맞은 일본 유일의 저널리스트 직능단체, 일본저널리스트회의(JCJ)의 슬로건이다.
일본의 저널리스트들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언론이 군국주의를 막지 못한 역사를 반성하고, ‘일본신문통신방송노동조합’과 JCJ의 전신인 ‘일본저널리스트연맹’을 결성했다. 그러나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연합군총사령부는 1950년 사회주의자들을 공공조직과 기업에서 몰아내고 좌파 운동을 억압하는 ‘레드파지(Red Purge)’를 추진했다. 이후 일본의 노동운동은 큰 타격을 받았으며 저널리스트들의 조직 역시 괴멸 상태에 빠진다.
1952년 미일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 연합군총사령부 점령 시절의 극심했던 언론통제는 해빙기를 맞는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주화운동 세력도 고양되기 시작했다. JCJ의 창립도 이때 계기가 마련됐다. 일본 사회 전반에 자유화 바람이 불면서 사실상 해산상태였던 일본저널리스트연맹에 국제저널리스트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Journalists)의 편지가 배달됐다. 국제대회에 일본 저널리스트 대표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패전 이후 일본 저널리스트들은 해외 취재를 금지당한 상태였다. 취재의 자유를 염원하던 일본 저널리스트들은 ‘국제저널리스트집회찬동자대회’를 개최해 일본 저널리스트들의 통일적 조직인 JCJ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초대 회장은 ‘세카이’(世界)의 편집장인 요시노 겐지로였다.
JCJ는 이후 신문·방송·통신·출판·사진·광고·평론 등 저널리즘과 관련된 제반 영역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다수가 가입해 ‘언론·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사실 보도를 통해 평화와 민주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JCJ의 회원 규모는 8백명 가량. 신문 방송 기자 뿐 아니라 프리랜서 기자, 저널리즘 연구자, 시민운동가 등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자기 의지가 있으면 월 1천엔의 회비를 내고 누구든지 가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출판 분야 저널리스트들의 참여가 활발한 편이다. 사이타마, 홋카이도, 히로시마를 비롯해 12개 지역에 지방지부를 두고 있다. 분야별로는 광고지부, 출판부회, 방송부회, 신문부회로 나뉜다. 직장지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지부, 도쿄신문지부 등 4개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회장 제도는 없고 6명의 대표위원이 공동으로 운영한다.
우리나라의 한국기자상과 비슷한 ‘JCJ상’을 1958년부터 매년 수상하고 있다. 2002년부터는 ‘구로다 기요시·JCJ 신인상’ 2003년부터는 ‘JCJ시민미디어상’을 신설했다. 6월집회, 8·15집회, 12·8집회 등은 연간 벌이는 주요활동이며 각 지방, 분야별·지부별로 각종 학습회를 연다. 전국각지의 교류집회를 계속하며 오키나와 미군기지 등에 취재투어도 벌이고 있다.
JCJ는 매달 기관지 ‘저널리스트’(The Journalist)를 발행한다. 타블로이드 판형에 8면으로 구성된다. 소속 회원 1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가해 만든다. 원고료는 전혀 받지 않는다. 8백명의 회원에게 우편으로 배달되는데 연 3천엔의 발송료를 받는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액수라 인쇄비용 등을 감안하면 적자를 면치 못한다고 한다.
JCJ 역시 고민에 빠져있다. 젊은 기자들의 가입이 줄어들면서 회원들의 고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예산의 대부분을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는 현실에서 항상 적자 예산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기관지 ‘저널리스트’에 실리는 광고 수익도 있으나 JCJ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광고만 받고 있다. 국가나 기업의 지원 역시 절대 받지 않는다는 게 조직 방침이다.
일본=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