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예상했던 iTV정파 ‘2년3개월’...생계·신념 위한 투쟁으로 ‘만신창이’

조합원 1백80명 모두 경인TV 입사...10월 시험방송 거쳐 11월 개국예정
옛 iTV희망조합원 1백80명 전원은 다음달 31일까지 경인TV에 입사한다. 더욱이 이 중 20여명의 비정규직 사원들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 입사하게 됐다. 경인TV는 올 10월1일 시험방송을 거쳐 11월1일 정식 개국할 예정이다.
그러나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다. 이리 오래 걸릴지 아무도 몰랐다. 단지 6개월 동안 실업 수당을 받으면서 조만간 방송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인고의 시간은 8백일 하고도 25일 동안 이어졌다.
2년 3개월 동안의 실업. 그것은 누구도 원치 않던 결과였다.
지난 2004년 12월31일 iTV가 정파됐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방송위원회가 재허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정파되는 그날, 1백80여명의 희망조합원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희망을 노래했다. 좋은 방송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하지만 그들의 바람은 사업자 선정 과정과 이후 11개월이 넘도록 방송위원회가 허가추천을 연기해 꺾일 수밖에 없었다.
실업은 희망조합원들의 삶 자체를 바꿔 놓았다.
노부모님에게 애증의 아들, 딸이 됐으며 어린 아이들에게 무능한 아빠, 나쁜 엄마가 돼야했다. 방송인이라는 ‘빛 좋은’ 타이틀은 사라졌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생계의 어려움이었다. 제대로 받지 못한 퇴직금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 게다가 퇴직금의 20%는 창사 기금으로 내 놓았다. ‘버는 것은 어려워도 쓰는 것은 쉽다’더니 퇴직금은 어느새 사라졌다. 희망조합원들은 누구 하나 빚이 없는 이가 없을 정도다.
좋은 방송을 만들 것이라는 희망과 자신들이 가고 있는 길이 옳다는 자부심으로 버텼다. 그러나 커가는 아이들, 늙으신 부모님을 보노라면 가슴은 찢어졌고 먼지 하나 나지 않는 주머니는 눈물을 곱씹게 했다.
막노동, 대리운전, 주유소, 학교 급식 배달, 편의점·호프집 아르바이트 등 어느 하나 안 해본 게 없다. 생계와 투쟁을 동시에 하느라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극성 위염, 알코올 중독은 물론 암과 싸우는 조합원들도 생겼을 정도다.
영상취재를 담당했던 한 조합원은 “세월이 지나니 사람이 자신감이 없어지더라”며 “자신감이 없어지면 무능력해지고 나이의 한계가 일찍 느껴지면서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가장이 하는 일이 없다보니 가정불화가 생기고 또 술을 찾게 되는 악순환이었다”며 “대인기피증까지 겹쳐 죽음까지 생각해 볼 정도”라고 덧붙였다.
생활고는 모든 희망조합원들에게 공통적으로 찾아왔다.
방송편집을 했던 한 희망조합원은 “고정적인 월급이 필요해 제일 먼저 구인 광고를 뒤져 공장을 찾아갔다”며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좌석 시트를 만들거나 브레이크등을 만드는 프레스 공장에서 2교대로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낮과 밤을 개의치 않고 일해야 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어느 날 세수를 하는데 수돗물을 보면서 ‘아~ 수도세를 못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조합원들은 다른 직장을 찾지 않았다.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었으며 ‘공익적 민영방송’을 위한 믿음이 굳건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과 바람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방송위원회가 5일 경인TV에 대한 조건부 허가추천을 의결한 것이다. 모든 조합원들은 환호했으며 어떤 이는 회한과 기쁨이 가득한 눈물을 흘렸다.
희망조합원들에게 8백25일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선망의 직종의 하나인 ‘방송인’이었다가 힘든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그러나 희망조합원들은 이런 경험들은 다시 시작할 방송에 고스란히 담아낼 생각이다.
희망조합 이훈기 위원장은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이 단지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상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채찍질로 받아들인다”며 “보다 좋은 방송을 만들라는 시련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