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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안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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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생이 두만강을 건넜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던 지난해 12월25일 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드디어 최욱일씨가 북한을 탈출했다는 소식이었다.
최씨의 부인 양정자씨의 보호자 역할을 겸해 동행 취재하기로 했다. 12월31일 양씨와 함께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주름이 깊게 팬 늙은 부부는 옌지의 한 식당에서 31년여만에 상봉했다. 하지만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북한인 안내인이 눈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를 따돌려야만 했다. 북한인 안내인에게 계속 술잔을 권하는 사이 최씨 부부는 쏜살같이 택시를 잡아타고 안전가옥으로 피신했다.
최씨는 안전가옥에 도착하고 나서야 북한에서의 참혹한 생활과 탈북 과정을 하나씩 풀어냈다. 앞서 귀환했던 납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납북자 명단을 내밀자 손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그들의 주소와 생사도 확인했다.
이제 최씨를 안전하게 영사관에 인계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선양 한국총영사관 직원은 최씨의 도움 요청에도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느냐”고만 따져 물었다.
최씨 부부의 기구한 사연과 영사관의 무성의한 태도가 고스란히 담긴 기사와 동영상은 조선일보 지면과 조선닷컴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제2의 대사관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외교부는 뒤늦게 재발 방지와 최씨의 조속한 귀환을 약속했다. 다행히 최씨는 보도 10여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4백80여명의 전후(戰後) 납북자는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죽었다면 제삿날이라도 알려달라는 늙은 어머니들의 한 맺힌 피울음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이제는 죽음의 문턱이 멀지 않은 고령의 납북자 가족들이 그 소원을 풀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