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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가 아니라 밑에서 보는 신문"

한겨레 창간호 복간

장우성 기자  2007.02.28 16: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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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자·연탄가게 사장·택시 운전사 등 축하 메시지
창간정신 ‘그대로’…1천부 추가인쇄 예정



   
 
  ▲ 한겨레 창간호  
 
갑자기 치르게 된 대표이사 선거로 한겨레 안팎이 어수선한 가운데 묻혀버린 일 하나가 있다. 한겨레 창간호 복간이다.

한겨레는 그동안 행방이 불확실했던 창간호 필름을 편집국과 제작국이 함께 찾아내 지난 1월말 1천부를 다시 인쇄했다. 1차 인쇄분이 모두 소화돼 1천부를 더 찍을 예정이다.

한겨레측은 지난 1월 복간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창간호 필름 보관 상태를 확인해봤더니 32면 가운데 28면이 남아있었다. 유실된 나머지 4면의 데이터는 보관본의 사진을 찍어 되살렸다.

한겨레 측은 “창간호를 구할 수 없냐고 묻는 독자 및 기자들이 많았고, 신세대 기자들에게도 한겨레의 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복간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내외 반응은 좋은 편이다. 복간호를 배포한지 1주일 만에 바닥이 났다. 한겨레측은 다음달 31일 열리는 주주총회 때 주주들에게 창간호를 나눠주기로 했다. 신규독자에게는 첫 신문 배달 때 덤으로 준다. 취재원이나 회사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도 돌아갈 예정이다.

창간호에는 한겨레의 창간 당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주목을 끈다. 편집국의 한 중견 기자는 “창간호에는 한겨레의 기반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출발했는지 잘 나타나있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송건호 발행인은 창간사에서 “한겨레는 기성언론과는 달리 집권층이 아닌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위에서가 아니라 밑에서 볼 것이다. 기성언론과는 시각을 달리할 것이다”고 밝혔다.

김수환 추기경은 창간축하 글에서 “민주화의 징표로 우리의 신문 하나만이라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라 왔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의 신문을 갖게 됐다”며 “이땅에 ‘또하나의 신문’이 아닌 ‘다른 하나의 언론’으로 분명히 우뚝 설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지하 시인은 ‘사람을 거룩하게 드높이라’는 기고를 통해 “소수 무당의 말 독점에서 말의 민중적 운용으로 전환하는 위대한 언어적 전투의 선봉이 곧 한겨레신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썼다. 고은 시인은 ‘온 겨레의 소리 그대 영원하라’는 창간 축사를 보냈다.

창간기념 특집좌담에 나선 백낙청 교수(서울대)는 한겨레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겨레신문은 운동권과 제도권이 마주치는 접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클 것이고 또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우 성취하는 것도 클 것입니다.”

창간 축하 메시지는 막노동 노동자, 연탄가게 사장, 농민, 택시운전사 등 서민들이 채웠다.

리영희 선생과 고인이 된 정운영 전 경기대 교수(당시 비상임 논설위원), 이오덕 선생, 조영래 변호사(비상임 논설위원) 등 당대 비판적 지식인들의 절정기를 느끼게 하는 기고도 읽을거리다.

정영무 현 편집국장 직무대행, 김종구 미디어사업단장, 이인우 인사·교육 담당 부국장, 오태규 민족국제 부문 편집장, 김이택 아젠다 팀장 등 현직 간부들의 일선 기자 시절 기사도 읽을 수 있다. 미디어오늘 현이섭 사장, 미디어오늘 고승우 논설실장, 한국일보 고종석 논설위원, 뒤에 정계에 진출한 열린우리당 문학진 의원,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의 한겨레 기자 시절 글도 볼 수 있다.

현장에서 뛰는 한 젊은 기자는 “매일매일 취재 활동에 타성에 젖기 쉬운데, 창간호를 보니 당시 선배들이 신문에 담으려 했던 가치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