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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위원장의 가족들이 12일 서울 영등포교도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민중의 소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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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위원장의 부인, 아니 지금은 동지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임경옥씨는 12일 세 아이와 영등포교도소 앞에서 피켓 시위에 나섰다. 교도소측이 김 위원장의 귀휴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앰네스티 양심수 김성환 위원장을 석방하라.” “귀휴불허 철회하고 우리아빠를 보내주세요.”
피켓에 적힌 구호는 침묵 속에서도 종소리처럼 울렸다.
“이번에는 꼭 사면 대상자에 포함되리라 생각했어요. 사면이 안되면 귀휴라도 될 줄 알았죠. 애들에게도 다 그렇게 말했거든요. 이번엔 아빠 꼭 나온다고요.”
다섯 식구 먹기에 전기밥솥이 작아 새 밥솥까지 사놓았다. 귀휴일로 신청한 14일엔 둘째 갈음이와 막내 대무의 졸업식도 있었다.
하지만 사면 대상자에 김성환이라는 이름 석자는 없었다. 교도소는 귀휴도 불허했다.
난생 처음 아이들에게 함께 시위를 하자고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엄마 모두 고생하시는데 저희도 힘이 되고 싶었어요.”
세 남매에게 아버지의 싸움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어릴 때는 잠시 원망도 했다는 맏딸 한나씨. 변함없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아버지를 보며 이제 이해하고 지지하게 됐단다.
혼자서 삼성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는 숱하게 해봤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것은 처음이다. 아이들과 나선 시위. 그날 따라 찬바람은 유난히 불었다. 임경옥씨의 가슴도 성했을 리 없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행복했다. 미소 속에 희망이 있었다.
임씨는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위장취업’을 해 노동자가 됐다. 그때 부천에서 만난 선배 노동자가 바로 김성환 위원장이었다.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아요. 그리고 인간적이고 남자답고 정직하고… 그 모습에 반했죠.”
김성환 위원장이 삼성과의 싸움에 나선 뒤 그는 가장의 역할까지 떠맡았다.
새벽 우유배달을 한지가 벌써 8년째다. 낮 시간엔 김 위원장의 뒷바라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젠 오토바이 운전 실력이 제법인 걸요.”
낮에는 1인 시위를 벌이고, 갇혀있는 김 위원장의 손발이 된다. 언론인들도 만난다. “앰네스티 양심수 김성환”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 뛴다.
“앰네스티 양심수가 됐다는 건 김성환 위원장이 죄가 없다는 걸 국제적으로 인정했다는 말이죠. 노동자들에겐 정말 기쁘고 힘이 나는 일 아니겠어요. 기자 분들이 많이 알려주세요.”
그토록 기다렸던 아빠의 귀환은 이번에도 이뤄지지 못했다. 아빠는 결국 졸업식장에 올 수 없었다. 김성환씨 가족의 보금자리는 인천의 25만원짜리 월셋집이다. 아내와 세 아이는 아버지가 문을 열고 돌아오는 날을 꿈꾼다. “가족의 연대감”을 그리워하는 한나씨는 세상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 가족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