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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문상 화백의 '화첩 인터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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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인정한 양심수,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을 아십니까?
일부 보수 세력이 말하듯 이른바 “반기업적·좌파정권 집권 10년”에 아직도 노동자 양심수가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삼성에 노조가 있다는 것도 낯설다. 더군다나 노동자 김성환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언론도 그를 좀처럼 조명하지 않았다. 앰네스티가 그를 양심수로 판단했다는 보도는 일부러 애쓰지 않으면 찾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노동운동 전반이나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는 오래전부터 유명인사다. 본보는 12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그를 접견했다. 무노조경영을 표방하는 삼성에 맞서 2000년 ‘삼성그룹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를 만들고 2003년에는 삼성일반노동조합을 결성한 김성환 위원장은 지금 영등포교도소에 갇혀있다.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표 등의 죄로 3년5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2003년 ‘삼성재벌노동자탄압백서’를 만들어 허위사실을 유표, 삼성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삼성 SDI 분신기도사건을 맞아 또다시 삼성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듬해엔 ‘삼성 SDI 노동자 핸드폰 복제 사건’을 폭로하면서 이건희 회장 등 삼성 고위 임원들을 고소했다. 결국 그는 2005년 되레 법정구속을 당했다. 이전 집행유예 받은 형기를 합친 3년5개월의 징역을 살게 됐다.
1996년 이천전기 노동자 시절부터 시작된 김 위원장과 삼성의 싸움은 이제 10년을 넘겼다.
김 위원장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사람 같았다.
12일로 단식 7일째. 수감 후 7번째 단식이다. 교도소의 귀휴 불허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교도소에 설을 맞아 귀휴를 신청했다.
2005년 4개월 간격으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이번 설만큼은 부모님께 한 잔을 올리고 싶었다.
형기의 반 이상을 살았고, 앰네스티가 자신을 양심수로 인정한 마당에 귀휴 요청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도소 당국은 귀휴를 불허했다. 교정심리심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상자에도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정심리심사를 위한 설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자위행위를 하루에 몇 번 하느냐, 다른 유부녀와 정사를 상상한 적이 있느냐는 식의 반인권적인 질문을 합니다. 이에 답하기를 거부했죠. 심사에 응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며 제게 사인을 받아갔어요. 그러더니 이제는 그걸 이유로 귀휴가 안된다는 겁니다.”
교도소가 귀휴를 허락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소내 재소자 인권 보호를 위해 앞장섰던 자신에 대한 “괘씸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은 이레를 굶은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의 눈빛, 손짓, 목소리에는 강력한 에너지가 실려있었다. 이 사회 전체가, 청년들조차도 잃어버린 ‘저항’의 에너지였다.
양심수 노동자를 외면한 언론 이런 와중에 국제앰네스티가 김성환 위원장을 양심수로 판단했다는 것은 분명 희소식이었다. 과연 자격이 있는지 쑥스럽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 조그만 힘이 되지 않았겠냐는 자부심도 가졌다.
그러나 언론은 주목하지 않았다. ‘국제적인 감투’에 쉽게 흥분하는 우리 언론의 생리를 보면 의아한 일일 수 있다. 김성환 위원장은 에둘러 말했다.
“예전부터 신문에 삼성 광고가 늘어나면 ‘우리가 열심히 싸웠구나’라고 자부했습니다. 삼성이 제가 양심수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는 항소심 모두 진술을 통해 법원과 검찰을 비판했다고 한다. 삼성을 옹호한다는 것이었다. 판사는 허위사실 유포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바로 몇 달 뒤 ‘X파일’ 사건이 터졌다.
김 위원장은 삼성이 1년전 X파일 사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사재 8천억원을 내놓고 사회봉사활동을 약속한 데 대해 시민사회 차원에서 반드시 검증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삼성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동자 탄압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이 없습니다. 그동안 희생된 삼성 노동자와 그 가족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 요구합니다. 폭력, 물리력, 돈으로 노동자를 막지 말라는 겁니다. 노조를 결성하는 정당한 권리를 누리겠다는 노동자를 내버려두란 말입니다.”
최근 삼성 관련 기사 삭제로 불거진 시사저널 사태도 그에겐 남의 일 같지 않다.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저렇게 싸워주는 기자 분들이 고맙다”는 김 위원장.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영치금이라도 털어서 기금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귀휴가 허용되면 직접 찾아가볼 생각이었단다.
그만큼 언론에 할 말이 많은 사람도 없는 듯 했다. 삼성과 맞선 10년은 철저히 외로운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은 그를 철저히 외면했다. “웬만한 언론사와는 안 좋은 인연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메일을 해킹당하고, 미행이 일상화된 삶을 살았지만 기자들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부당한 억압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줬으면 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세상은 좋아질 것입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 개혁적 언론에도 관심이 많다. 수감 생활 중에도 두 신문을 잘 읽고 있다는 그는 “최근에는 지면에서 노동자, 서민들의 입장이 자꾸 희석화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삼성은 무조건 선(善)입니까” ‘골리앗 다윗의 싸움.’ 누가 골리앗이고 다윗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곧 출판될 그의 책 제목도 ‘골리앗 삼성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삶이 보이는 창 펴냄)이다.
삼성과 김성환 위원장의 싸움은 바로 그랬다. 그런데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여론이다.
일류기업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삼성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을 먹여 살린다”란 말도 과장되게 들리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불가능한 꿈’ 대신 삼성에서 일하는 꿈을 꾼다. 우리가 입는 것, 먹는 것, 쓰는 것 모두 삼성과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의 가슴팍에 빛나는 삼성의 로고에 가슴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그런 존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현실이다. 그도 삼성 본관 앞에 시위를 갔다가 “왜 삼성을 욕하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김 위원장 역시 삼성의 사회적 기여를 무시하지 않는다. 그만큼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삼성의 어두운 면도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삼성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족벌세습, 세금포탈, 주가 조작, 노동자 탄압과 인권유린 같은 폐단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삼성이 하는 것은 모두 선(善)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삼성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당당하게 자본주의 원리에 맞게 경영해야 합니다.”
을씨년스런 교도소의 접견실에는 양철 연통의 난로의 열기가 어색히 차올랐다. 그리고 눈앞에는 푸른 수의를 입은 노동자. 시간은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했다.
그는 한 기업과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물신(物神)’의 신화와 싸운다고 했다.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는 시대와의 투쟁이었다. 그가 삼성과 싸운 10년 간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스스로 ‘물신’이라는 화두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제, 문화, 사회 모두 신성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물신의 가치에 젖어있습니다.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는 건 결국 물신과의 싸움입니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