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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MB 심병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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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로 하기에는 해야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하천생태 공학 전문가의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미 취재와 기획이 끝났고 1주일 안에 제작을 위해 일본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진실성 실린 말에 취재진은 이미 KTX를 타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대구에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있는 고양시까지는 KTX를 타고도 3시간 반이나 걸렸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풍채의 하천생태 공학 전문가인 이삼희 박사는 만나자마자 댐 수문이 터지듯 열띤 강의를 쏟아냈다.
3시간에 걸친 강의는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요지는 이랬다. 하천은 자연적인 교란이 허용돼야 가장 자연스러운데 현재 하천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도 하천복원 방식은 이를 무시한 채 정원 가꾸기처럼 예쁜 하천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청계천 신드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던 청계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박사의 설명을 듣고 취재진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하천복원 관련된 지식이 잘못됐고 표피적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 모범으로 여겨졌던 일본의 하천복원 방식도 문제가 많음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취재진은 큰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취재하고 기획했던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작 일정과 섭외 등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미 제작 일정 등은 데스크에게 보고가 돼 있다. 일본의 전문가와 관련 기관에는 이미 인터뷰와 취재 협조가 끝난 상태이다. 프로그램을 맡은 연출자로서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한다는 것은 참 자존심 상하고 스타일 구겨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잘못된 내용을 보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전문가와 관련 기관에 전화를 걸어 제작 일정이 변경됐음을 알리고 양해와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원점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일본 하천복원 연구의 중심인 자연공생연구센터와 큐슈대학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하천의 자연적인 교란을 허용하는 방식의 하천복원에 연구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기존 20여 년 동안의 하천복원 방식은 자연적인 교란을 무시한 채 이뤄져 하천의 육상화 등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하천에 물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줘 자연적인 교란을 허용하는 방법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하천가의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매입해 유수지로 만들어 치수정책을 쓰고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이 과거에 겪었던 시행착오를 그대로 답습해 청계천을 복원했다. 그리고 이 방식은 국내 하천복원의 모범으로 여겨져 전국적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천편일률적으로 제 2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댐과 경관 목적의 수중보를 무분별하게 건설해 물길이 움직일 공간을 주지 않아 자연적인 교란이 멈춰 생태계가 기형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천은 인간의 간섭 없이 자연의 순리대로 흐를 때 가장 좋다는 사실이 취재결과 입증된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육상동물의 70%가 하천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하천이 죽으면 육상동물의 생존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개발과 그에 따른 이익에 눈이 멀어 스스로 하천을 죽이고 있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취재진의 이런 바람이 어느 정도 현실화된 것 같아 무엇보다 기쁘다. 끝으로 졸작을 이달의 기자상에 선정해 주신 심사진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