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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87년 금창태 사장이 집필한 중앙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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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5월 12일字 ‘王朝의 言路와 오늘의 言論’>
“언관들이 간(諫)하는 말은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해도 함부로 벌을 주지 않았고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 할지라도 말의 출처, 곧 언근을 캐지 않는 것을 임금의 도량으로 여겼다”
“언근을 캐고 책하는 사람의 말꼬투리를 잡아 벌을 주면 언로가 막히고,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고 여겼다”
시사저널 사태가 무기한 파업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6월 삼성관련 기사가 편집국장의 동의 없이 삭제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노사의 입장차는 변함이 없다. 사측은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고 파업에 대비, 편집위원을 대거 영입하면서 협상의 여지가 좁아진 노조는 파업이란 마지막 수단을 택했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이를 비난하며 현장에 복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가 회사 고유의 인사권 및 경영권 사항인 편집국장 임명동의제 내지 중간투표제 관철, 징계 무효와 징계자 복직, 인사위원회에 대한 노조측 인사 참여 등을 요구하고 있어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갈등은 깊어져 해법은 멀어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금창태 사장이 중앙일보 재직시절 썼던 기명칼럼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가 썼던 칼럼과 시사저널의 현재를 비교했다.
금 사장은 중앙일보 편집국장대리 시절 ‘중앙칼럼’에 촌철살인의 글들을 썼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을 전후로 학생운동, 노동운동, 개헌요구 등 당시 치열한 민주화 요구에 부응하는 칼럼들을 남겼다.
노사관계·노동문제 인식관
금 사장은 노사관계와 노동운동에 대해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칼럼들을 썼다.
1987년 8월4일자 ‘쥐잡다가 독깨는 우 경계하자’는 제목의 칼럼이 대표적이다. ‘노사문제는 공존공영 바탕위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칼럼에서 금 사장은 노사관계의 모순과 갈등이 순리로 풀리지 못한 채 근로자의 울분으로 쌓여왔다고 설명했다. 성장과 수출 신장에 역점을 둔 정책으로 근로자의 기본권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고, 노동정책이 근로자의 권익보장이 아닌 보장요구를 제도적으로 막는데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금 사장은 칼럼에서 “그러기에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근로자들이 그동안 억눌렸던 자기주장을 목청 높이 외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다”며 “민주적 노사관계는 사용자측의 각성·양보와 함께 근로자들의 분별과 자제, 그리고 호양(互讓)의 정신이 요청되는 쌍방관계”라고 주장했다.
금 사장은 “노동운동은 근로자들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기업내부의 활동으로 전개되고 근로자와 사용자가 호양의 정신을 바탕으로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사갈등의 해결에 가장 중요한 점은 누구나 강조하듯 대화와 설득이다. 이점을 금 사장도 강조했다. 아니 안타까워했다.
금 사장은 1987년 4월21일자에 ‘「무용의 용」, 그 지혜가 아쉽다’ 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대화와 설득은 시간낭비 아니다’는 부제의 이 칼럼은 다시 개헌정국 파장으로 국민들의 실망이 가득한 상황을 기술했다.
금 사장은 칼럼에서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갖가지 갈등과 마찰도 모든 것을 힘으로 눌러 해결하려는 데서 나타나는 양상이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라고 주문했다.
마찰과 갈등의 원인에 대해서 금 사장은 “분명히 부당한 구석이 있어서 그 개선이나 조정을 요구해도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서는 잘 먹혀들지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요구나 주장은 ‘황야의 외침’에 지나지 못하고 무력감만 들뿐이라는 것이다.
금 사장은 “집단행동·집단저항이 괜히 나타나는게 아니다”며 “(집단행동은) 한마디로 현재 우리사회의 정치·행정이 국민의 욕구를 정상적 제도나 과정을 통해 제대로 수렴, 해결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경보신호임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시사저널 안에서의 경보신호는 빈번히 일어났다. 이윤삼 전 편집국장이 항의 차원의 사표를 제출했으며, 기자들이 들고 일어나 반발했다. 이에 금 사장은 사표를 즉각 수리했고, 편집권 침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자들에게는 징계로 대응했다. 급기야 무기한 파업에 이르자 이제는 파업이 불법임을 주장하며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금 사장은 시사저널 사장으로서 취한 일련의 조치와 달리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적 절차와 정치과정의 회복을 강조했다.
금 사장은 같은 칼럼에서 “민주적 절차는 반대의견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대화를 통해 쟁점을 부각시키고 정리해가며 타결 짓는 것”이라며 “절차가 번거롭고 지루하다고 해서 ‘소모적 낭비’로 몰아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는 것은 결코 민주적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금 사장은 ‘무용의 용’ 즉 비능률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효용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이런 과정을 거쳐 도달한 합의라야 진정한 합의라고 거듭 강조했다.
금 사장의 언론관 지난 1999년, 당시 발행된 기자협회의 월간지 ‘기자통신’ 12월호에는 같은 해 10월26일 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한 금 사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언론관에 대해 ‘독자 제일주의’와 ‘불편부당’을 꼽았다. “언론은 불편부당의 자세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정한 심판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언유착, 관언유착, 경언유착 등의 형태는 더 이상 있어선 안될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이에 앞서 금 사장은 1987년 5월12일자 중앙칼럼에 ‘왕조의 「언로」와 오늘의 「언론」’이라는 제목과 ‘귀에 거슬려도 듣는 아량 아쉽다’는 부제의 칼럼을 썼다. 이 칼럼에서 금 사장은 인조반정 이후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조정은 당파 분열로 싸우고만 있을 때 사헌부 장령으로 부임한 강학년의 예를 들며 언로가 열려 있는 여론정치와 적극적인 언론을 칭찬했다. 이 칼럼에서 금 사장은 태학생과 시골 선비는 물론 기녀에 이르기까지 백성이면 누구나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려 치정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가 있어 당시 절대권력이던 임금들조차 그 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수는 없었다는 점을 역설했다.
칼럼에서 금 사장은 “언관들이 간(諫)하는 말은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해도 함부로 벌을 주지 않았고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 할지라도 말의 출처, 곧 언근을 캐지 않는 것을 임금의 도량으로 여겼다”며 “언근을 캐고 책하는 사람의 말 꼬투리를 잡아 벌을 주면 언로가 막히고,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고 여겼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사장으로서 금 사장은 지금까지 기사 삭제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들을 징계했다. 또 지난해 8월 기자협회보 특집호에 실린 시사저널 이철현 기자의 기고에 대해서는 “어떤 의도에서 그런 기고를 했느냐”며 해명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이것이 기사면 파리도 새다’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 시사저널 제899호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고재열 기자를 ‘해사행위’를 이유로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자신이 강조했던 ‘언근을 캐지 않는 도량’을 어긴 셈이다.
같은 칼럼에서 금 사장은 당시 상황을 “문제의 제기나 개선의 주장이 수렴돼 공론으로 승화되고 그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기는커녕 거꾸로 끗발 쥔 쪽의 주장만이 일방적으로 강요된다”며 “비판이나 반대는 적대시되고 불온시되어 억압의 대상으로만 간주되는 정치·언론 상황은 왕조시대보다 도리어 뒤지고 있다는 느낌마저 금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지만 “편집권 침해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들을 감봉, 정직, 무기정직, 대기발령 등 일련의 징계와 조치를 취한 ‘끗발 쥔 쪽’의 행태는 왕조시대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냐”는 언론계의 물음이 나올 법 하다.
금 사장의 시국관 금 사장은 1986년 여야가 개헌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던 5월27일 각계의 시국선언과 젊은이들의 분신·투신자살 등 시민과 학생의 주장에 대해 중앙칼럼에 ‘온건주장 수용해야 과격 막는다’는 칼럼을 썼다. 부제가 ‘누르기만하면 큰 후유증 낳을뿐’인 이 칼럼에서 금 사장은 “사회의 선도적 역할을 맡은 지식인들이 집권층을 향해 개혁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며 “우리사회가 진정으로 과격, 급진성향을 막아야 하겠다면 이러한 온건하고 평화적인 의사표현을 능동적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 사장은 사회각층의 요구나 문제 제기가 효과적으로 수용되지 못한데다 오히려 적대시되고 억압의 대상이 됐다고 봤다. 이는 국가비상사태선언, 긴급조치, 유신체제와 같은 변칙적 수단에 의해 분출된 개혁의 욕구가 강압적으로 억눌림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금 사장은 칼럼에서 “물론 금지된 집단행동이나 신분에 걸맞지 않는 요구라면 긴급히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질서유지의 의무를 진 정부로서는 정당화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러한 제동장치는 어차피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표출된 불만을 달랠 수 있는 대응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긴급대책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필요 이상의 후유증을 병발하기 십상이다”고 밝혔다.
금 사장은 이러한 칼럼의 주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해 시사저널 사태에 동감하는 기자협회의 성명서와 민언련의 논평에 자신의 40년 언론인으로서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노조는 파업을 결정했고, 많은 언론인들은 오마이뉴스에 릴레이 기고를 통해 시사저널 경영진을 비판하고 있다. 사태를 억누르려다 보니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대혁 기자 daebal94@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