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언론인들의 연구.친목 모임인 관훈클럽(총무 이재호.동아일보 논설실장)이 11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지난 1957년 만들어진 관훈클럽은 그동안 언론 연구와 친목을 도모했을 뿐 아니라 선진 저널리즘 도입하는 등 우리 언론 발전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초창기 젊은 기자들이 중심이 돼 설립된 관훈클럽이 새로운 반세기를 앞두고 ‘젊은 피 수혈’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관훈클럽 역사
관훈클럽은 미 국무성 초청연수를 갔던 젊은 기자들이 중심돼 조직됐다.
20대~30대의 젊은 기자들로 출발한 관훈클럽은 전쟁 이후 피폐해진 고국을 위해 친목.연구를 목적으로 한 언론단체를 조직, 6개월 동안 미국에서 배워 온 것을 언론 발전에 활용하기 위해 설립됐다.
관훈클럽은 1957년 1월11일 관훈동 84의 2번지 클럽운동의 모태가 됐던 고(故) 김인호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박권상 전 KBS사장, 정인량 전 현대경제일보 상무이사의 하숙집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명칭도 발상지의 이름을 빌려 관훈클럽으로 지칭했다.
◇관훈클럽 활동
관훈클럽이 지난 50년 동안 언론계 발전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해 왔다.
관훈클럽은 △신문의 날 제정 △한국신문편집인협회 결성 △신문윤리강령 제정 △기사 스타일북 제작 등에 있어 산파 역할을 했다.
또 현재 ‘관훈저널’의 모태이자 우리 언론 최초로 저널리즘 연구 계간지인 ‘신문연구’를 창간, 저널리즘 발전에 공헌했다.
특히 관훈클럽의 대표 상징이기도 한 ‘관훈토론회’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토론 모델로 정착, 사회 공론을 형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관훈토론회는 관훈클럽이 공식출범하기 1년 전부터 젊은 기자들이 연구발표와 외부인사를 초청하는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다가 1961년 2월4일 장면 당시 총리를 초청한 토론회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다.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씨’를 차례로 초청 토론회를 개최해 언론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 밖에도 ‘관훈언론상’과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 제정과 국내외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언론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위상 및 과제
현재 관훈클럽은 9백39명(여기자 70여명 포함)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현직 언론사 사장들 가운데는 경향신문 고영재 사장, 서울신문 노진환 사장,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 문화일보 이병규 사장, 중앙일보 권영빈 사장, 한국경제 신상민 사장, 서울경제 임종건 사장, 연합뉴스 김기서 사장 등이 관훈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회원들이 주요 언론사 현직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인적네트워크에 비해 현재 언론계에 대한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낮고 현장 기자들과의 교류가 부족하다보니, 밖에서 바라보는 관훈클럽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일각에선 “관훈토론회 외에는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회원가입 자격을 통상적으로 12~13년차 이상 기자들에게 주어지다 보니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시니어급 언론인의 모임이란 이미지가 강해졌다.
이 때문에 여기자와 함께 젊은 기자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느냐가 관훈클럽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다.
한 중견기자는 “지나치게 엘리트 그룹처럼 비춰지는데 현장 기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중요하다”며 “관훈클럽도 시대가 변한 만큼 운영 전반 등에 있어 변화상에 발맞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