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늦더위에 찾아온 우리사회의 화두 1가지.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 위기 선언이 나온 배경은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출판과 학술담당 기자인 나는 ‘기사거리로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 ‘배부른 고민 아니야’ 라는 회의감도 없지 않았다.
단행본 출판시장이 최근 홍보·마케팅 열풍에 휩싸여있다. 1∼2주 내에 베스트셀러에 들이밀지 못하면 망하는 도서시장. 할인에다 경품, 1+1 등 덤을 얹어주지 않으면 세일즈를 하기 힘든 것이 우리 출판계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2년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마시멜로 이야기’는 출판의 홍보 마케팅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고상해 보이는 이미지의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을 번역가로 쓸 생각을 하다니….
선 지급한 인세만 12만불, 행여나 이 책이 실패할 경우 낭패가 예상되는 출판사는 결국 ‘부정’ 마케팅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나보다.
출판사는 책 홍보에 도움을 받고 방송인은 계약금과 인세에다가 잘만 되면 자신의 처져가는 이미지를 올릴 수도 있는 ‘윈-윈 전략’. 그들에게 번역가의 존재는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이철호 기자의 후속보도에서 드러났지만 방송인뿐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지식인이라고 인정되던 분들도 이름만 빌려준 대리번역에 참여한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팔았지만 취재 이후 떳떳이 명예를 지키기보다는 변명하기 급급한,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숨기에 급급했다. 과연 이 사람들에게 책은 어떤 의미이고 책 한 귀퉁이에 올라 있는 자신의 이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한 것일까?
문제는 이런 도덕적 해이가 우리 사회에 너무 만연돼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취재는 지식산업을 한다는 출판사가 남의 지식을 쉽게 돈으로 매수하는 일에 공범이 아니라 주범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지만 결과는 방송인 정 모씨의 신변에만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쏠렸고 결국 현재 네티즌들의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은 정 모씨 한 사람으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사회적으로 돈의 가치가 문학. 철학. 윤리 같은, 뭐 이런 ‘고리타분 것들’의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씁쓸함…. 인문학의 위기는 결국 이런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