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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술에 배부르지는 않아도

[남북언론인통일토론회 참관기]김보협 한겨레21 정치팀장

김보협 한겨레21 정치팀장  2006.12.13 15: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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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협 한겨레21 정치팀장  
 
세 번째 방북이었다. 1998년 11월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남북예술인들이 평양에서 제1회 윤이상통일음악회를 개최했을 때 처음 북쪽 땅을 밟았다. 남쪽 예술단 간사, 취재에 사진 기자 몫까지 하느라 바빴다. 첫날 공연을 마치고 한 마디 내뱉은 말이 싸움으로 번져 나머지 일정이 모두 취소될 뻔했다. 당시 북쪽은 ‘고난의 행군’ 시기로 몹시 어려울 때였는데, “거리의 인민들 표정이 밝지 않아 보여 안타깝다”는 말이었다.

금강산 육로관광을 포함해 두 번의 방북은 상대적으로 편했다. 익숙한 일이었다. 환경이 조금 다를 뿐, 취재하고 기사쓰는 일의 연장이었다. 이번엔 달랐다. 기자가, 언론인들이 주인공인 행사였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기자가 기사에 등장하는 일은 흔치 않다. 언론인은 화자가 되어 기사로 말하는 방식이지, 새로운 일을 벌이고 역사를 직접 만들어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래서일까. 남북 언론인들의 만남은 무척 늦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동·농민계, 종교인과 문화계, 여성계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 모든 현장에 언론인들이 뛰어들어 취재를 했지만, 정작 언론인들 사이의 교류에는 인색했다. 그래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언론인토론회는 만남 그 자체에만도 큰 의미를 부여할만한 행사였다.

어느 정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토론회는 성에 차지 않았다. 모든 것을 미리 ‘조직’해야만 하는, 그래서 인사말까지도 사전에 조율한 탓에 토론회는 정견 발표회에 가까웠다. 토론회가 끝난 뒤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다른 부문에 비해 한참 늦었는데도 ‘너무 이른 만남 아니었을까’ 생각할 정도였다.

얼음은 삼일포 산책부터 녹기 시작했다. 남쪽 언론인들은 여권 구실을 하는 여행증명서를 목에 걸고 다닌다. 북쪽 언론인은 배지(북쪽에서는 초상화라고 부른다)를 착용한다. 그런데 외투를 입고 섞여서 산책을 하다보니 누가 누군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말을 건넸다가 “저도 남쪽에서 왔는데요”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조심스러워졌다. 서서히 녹기 시작한 얼음벽은 저녁 만찬 때 흔적만 남았다. 여기저기서 ‘민증’을 깠다. 형님, 동생이 여럿 생겨났다.

논란의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나랏님을 대하는 태도부터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언론관도 다르다. 언론인이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직종에 종사한다는 것 이외에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느냐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탓인지,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린 탓이지 취기를 빌어 물어본 민감한 질문에도 북쪽 언론인들은 웃는 낯으로 대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답방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으면, 답방할 분위기를 조성해주지 못한 책임도 있지 않느냐고 대꾸했다. 김 위원장의 후계구도에 대한 물음에도 원론적인 수준이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자꾸 만나다보면 말이 통하고 정도 통할 것 같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아도 참을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