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언론인 교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민간교류나 정부간 대화와 뭐가 다를까?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남북언론인통일토론회에 대해 궁금해 했을 것이다. 사실 독일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분단국가의 언론인 교류는 통일의 최종단계에서 나타난다. 그만큼 언론인교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더구나 체제수호나 사상경호를 위해 붓대를 드는 북측 언론인들을 집단으로 만났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토론회는 만남은 대화로 이어지고, 대화는 ‘통일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줬다.
11월29일. 만찬이 열린 금강산 목란관은 ‘웃음 띤 담론’이 가득했다. 남북언론인 1백70여명이 한꺼번에 토해낸 쉼 없는 말들은 생면부지의 사람을 친숙하게 만들었다.
언론인들은 21개의 원탁에 둘러앉아 감격의 술을 마셨고, 감동의 담배를 피웠다. 어떤 선배는 1년간 참았던 술을 마셨으며, 어떤 후배는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술향이 묻어난 이야기는 ‘분단의 가슴’을 적셨다.
이 자리에서 만큼은 무슨 말이든, 어떤 질문이든 할 수 있었다. 서로의 솔직한 대답은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 냈다. 그야말로 목란관은 ‘이데올로기의 해방구’였다.
남측언론인들이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금강산으로 출발할 당시만 해도 이런 모습은 상상도 못했다. 10월9일 북핵실험이후 생긴 냉기류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모두들 ‘인터뷰나 대화가 어려울 거야’, ‘물어보면 이야기나 해 줄까’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북측 언론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북측 기자들은 “기자가 기자를 취재하는 것은 당연하지요”라며 “무엇이든 물어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남측언론인들은 주로 기사마감시간, 자녀수, 기자경력, 생활비(급여), 정년, 기자선발기준 등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모두 답해 주었다. 결코 억지춘향이 아니었다. 심지어 조선기자동맹소속 서효국 인민기자는 필자에게 명함(북한의 경우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명함이 없으며, 명함을 함부로 주지 않음)을 건네기도 했다.
북측 언론인들은 “남측언론은 ‘핵문제’나 ‘선군정치’를 어떻게 다루느냐”등을 제외하곤 민감한 질문은 자제했다. 주로 기자경력, 기자들의 역할, 보수신문의 보도, 인터넷사이트 등에 대한 질문을 했다.
한 순배, 두 순배 술잔이 오가고 대화는 점점 무르익었다. 몇 순배 술잔이 돌자 남과북 언론인들은 이미 선후배가 돼 있었다.
남측기자 “선배 한 잔 하시죠.” 북측기자 “안전하게 폭탄주 합시다(핵폭탄이 안전하다는 비유 때문에 웃음).” 잠시 뒤 여기저기서 “통일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터져 나왔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도 동시에 터졌다. 민족적 이질감이 동질감으로 전이하는 순간이었다.
만찬 후 남과북, 북과남 언론인들은 서로를 아쉬워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또 만납시다”라고 말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선배가 “감격스러웠다. 만나서 이야기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어”라고 평가하는 대목에서 리영희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언론은 외국강대국의 이익보다 민족이익을 우선해야 됩니다. 언론은 상황이 심각할수록 정부보다도 더 큰 일을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