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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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석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 정책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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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북과 남 언론인 여러분.
나라와 겨레가 갈라진 뒤 60여년 만에 북과 남, 남과 북의 언론인들이 처음 만나 토론을 벌이는 이 뜻 깊은 오늘,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6년을 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짚어 보는 것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로동신문> 주체91년 3월12일치 5면에는 3단 제목으로 ‘미국은 악의 제국’이라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기사 끝에는 <조선중앙통신>에서 인용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기사는 <한겨레> 2002년 2월6일치에 제가 쓴 칼럼 ‘악의 제국’입니다. <로동신문>에 그 칼럼이 전문 게재된 것을 저는 뒤늦게 알았습니다. 제가 그 글을 쓴 이유는 그로부터 일주일 전인 2002년 1월 30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들 국가에 ‘강경책’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시의 강경책은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2001년 9.11테러사태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문자 그대로 제국주의 정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습니다.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하물며 ‘미 제국주의’란 더 말할 나위 없다. 적잖은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법하다. 서슬 푸른 친미사대세력은 도끼눈을 홉뜰 성싶다. 하지만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제국주의든 미 제국주의든 그 말도 이제 시민권을 찾을 때가 되었다. 왜 우리는 제국주의를 마땅히 제국주의라고 비판하지 못했을까. 이 땅의 신문과 방송 때문이다. 이들은 군부독재가 쫓겨 간 뒤 사상의 보안관을 자임하고 나섰다. 제국주의라는 말은 금기시했다. 하지만 엄연한 주권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악패듯 죄어치는 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을 보라. 그리고 국어사전을 들춰보라. ‘막강한 군사적 경제적 힘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억눌러 자기 나라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경향.’ 제국주의의 사전적 뜻과 부시 정권의 모습이 똑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이어서 저는 “북엔 전쟁을 위협하며 남엔 낡은 전투기를 팔겠다는 미 군산복합체의 장삿속”을 거론했습니다. 제가 미국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 성격을 강도 높게 비판한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2000년 6월15일 역사적인 공동선언이 발표된 날의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월 14일 밤 한겨레신문 편집국에서 야간국장을 맡고 있었던 저는 6·15공동선언문을 처음 접했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야간 국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1면 머리기사를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있습니다. 공동선언을 찬찬히 정독했습니다. 결국 한겨레 6월15일자 1면 머리기사의 통단제목은 <연합·연방제 통일’지향 합의>로 발행됐습니다. 저는 공동선언의 핵심은 ‘자주적인 연합-연방제 통일’과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월15일자 <한겨레>는 “통일 열차로 남북 먼저 잇는다”는 제하에 경제 분야 교류를 부각해 편집했습니다. <한겨레>는 그 기사에서 자원과 전기는 물론이고 전자와 자동차 부문에서 남북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우연히 바로 그날 치에 쓰게 된 저의 칼럼 제목은 ‘두 동무’였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전망했습니다. 남과 북. “세계의 무대에 두 동무가 올랐다. 합의문을 전격 내놓음으로써 두 동무는 멋진 한판을 놀았다.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공연은 이제 겨우 1막만 내렸을 뿐이다. 무대 안팎에 어둠의 세력은 건재하다.”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바로 그 날 신문사 편집국에서 감동 속에 1면 머리기사 표제를 뽑으면서도 ‘무대 안팎에 어둠의 세력은 건재하다’고 쓴 까닭은 언론인으로서 익힌 현실감각이었습니다.
실제로 공동선언의 합의를 뒤트는 일이 곧 벌어졌습니다. 바로 그해 연말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시 부시가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선언의 앞날에는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다음해 6.15 공동선언 3주년을 맞아 저는 한겨레에 ‘통곡, 남북공동선언’ 제하의 글을 썼습니다(한겨레신문 2003년 6월8일치). 공동선언이 흐지부지 된 가장 큰 까닭을 저는 “선언이 발표될 때부터 헐뜯고 나선 반민족 언론과 저들의 ‘큰형’으로 등장한 부시 탓”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맺었습니다.
“우리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두 여중생의 1주기를 맞도록 피맺힌 한을 풀어주지 못했다. 손잡고 걷던 두 소녀의 피투성이 주검은 그대로 손잡았던 남과 북의 상징이 아닐까. 참혹하게 짓이겨진 온몸으로 남과 북의 내일에 경고를 보낸 게 아닐까. 두 원혼의 1주기인 오는 6월13일, 남북 정상회담 석돌인 그날, 다시 우리 모두 촛불을 들고 벅벅이 거리로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겨레의 밤을 밝혀야 할 위기 아닌가. 그래서다. 공동선언 1항을 가슴 저리며 쓴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눈을 슴벅이며 쓴다. ‘연합-연방제 통일안’과 ‘민족경제의 균형 발전’ 약속을. 전쟁의 짙은 먹장구름 아래 공동선언문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며 묻는다. 오늘 약속을 어긴 자 누구인가.
그 뒤 다시 3년이 지났습니다. 문제는 한층 악화됐습니다. 심지어 공동선언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남측 내부에서 이른바 ‘뉴라이트(신우파)’의 이름아래 세력화해가고 있습니다. 뉴라이트(신우파)를 적극 키워준 것은 다름 아닌 남측의 언론이었습니다.
남과 북, 북과 남의 언론인이 모인 자리에서, 공동선언 뒤 지나온 6년을 되돌아 본 까닭은 과거를 비판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흘러간 과거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에 있습니다.
우리 언론인들이 해야 할 일은 남과 북의 민중이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올바른 해결의 길을 모색해나가는 과정에서 풍부한 논의와 토론을 제공하는 데 있습니다.
공동선언의 두 핵심내용인 ‘연합-연방제 통일’과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흔히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실 두 합의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합-연방제 통일방안 없이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은 추구될 수 없고, 민족경제의 균형발전 없이 연합-연방제 통일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남과 북의 민족구성원 모두 삶의 질이 나아지는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기에 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남측 언론은 그동안 ‘통일 비용’에만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저는 오늘 역사적인 남북언론인 토론회를 계기로 이제 통일 효과에 눈 돌릴 것을 남과 북의 언론인들에게 제안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통일민족경제의 효과는 규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구와 자원의 결합은 물론이고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조건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군사비 절감과 기술협력의 도약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언론은 통일민족경제의 효과를 알려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 실현을 위한 과제를 의제로 적극 설정해 나가야 합니다. 먼저 개성공단을 보는 시각의 변화가 요구됩니다. 개성공단에 부정적인 미국의 입김에 흔들리는 보도와 논평을 벗어나 오히려 개성공단에서 더 진전된 경협을 의제로 설정해 나가야 합니다.
통일민족경제를 밑절미로 한 통일조국의 내일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남과 북 7천만, 재외동포까지 8천만 우리 민족이 힘을 모아 통일민족경제를 세우고 자주적으로 미, 일, 중, 러 주변 강대국들과 외교 관계를 재정립한다면, 우리는 주변국들의 지지를 받으며 당당하게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통일민족경제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연합-연방제 통일국가 건설은 우리 겨레, 분단 조국의 희망입니다.
6.15 공동선언의 실천에 앞장서고 남과 북에서 국민적 동의구조를 만들어 내야 할 과제가 바로 남과 북의 언론인들에 있습니다. 체제와 사상을 넘어서 남북 언론인들이 통일민족경제 구현과 연합-연방제 통일에 적극 나서는 바로 그 곳에, 분단시대 민족언론의 길이 있습니다. 분단조국의 희망이 있습니다.
고 늦봄 문익환 선생님은 자신을 ‘소영웅주의자’로 몰아친 남쪽의 언론이 자신에게 국가보안법 혐의를 들씌우자 당당히 말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찬양하고 고무해야 한다.” 저는 오늘 이 뜻 깊은 자리에서 남과 북의 모든 언론인들에게 호소합니다.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서로 찬양하고 서로 고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