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널리스트인가, 너절리스트인가.”
청운의 꿈을 품고 열어젖힌 저널리스트로서의 삶. ‘코트 자락 휘날리며’ 하루 24시간이 빠듯하게 뛰면서도 기자들은 정작 중요한 물음을 잊어버린다.
한국 사회에서 기자들은 진실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아닌 회사에 충성하는 월급쟁이로서, 시나브로 ‘저널리스트’가 아닌 ‘너절리스트’가 되어가고 있다.
한겨레 손석춘 기획위원은 ‘어느 저널리스트의 죽음’에서 자신의 준거집단을 향해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질타를 날린다. 그러나 문법은 단순하다. 기자라면,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대원칙을 복기하는 것이다.
“갈등을 해소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서로 다른 차이점을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주장할 때 대화나 토론을 통한 합의 마련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손 위원은 바로 이 지점이 ‘언론의 존재 이유’라고 설파한다.
사실 확인 또는 정확성이 “저널리즘의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이며 “언론비평의 기초”라고 명토박아 둔다.
문제는 이러한 상식이 분단 구조와 편향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질식되는 현실이다.
손 위원에 따르면 공론장을 파괴하는 한국 저널리즘은 이미 죽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오지않은 저널리스트’를 기다린다. 그가 말하는 죽음은 패배를 뜻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기자들의 뼈를 깎는 성찰을 촉구할 뿐이다. -후마니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