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의 ‘간첩단 사건’ 보도에 대해 언론계 안팎의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언론보도 자제를 요청한 데 이어 민가협 등 사회시민단체와 피의자 가족들은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를 규탄했고,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도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공안정국과 냉전을 부추기는 선동적 보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수사 등과 관련하여 확인되지 않은 일부 추측성 보도로 인해 사건 수사에 어려움이 있음을 깊이 이해하고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밝혔다.
2일에는 민가협 등 96개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의 보도를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언론이 기소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사건을 ‘간첩단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보도에서 익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아 심각한 인권 피해를 일으켰다”고 우려했다.
피의자 가족들도 “언론의 부문별한 보도로 생업에 곤란을 초래하고 가족들까지도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협회를 비롯한 14개 언론단체는 3일 달개비(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공안정국과 냉전을 부추기는 선동적 보도 중단하라’는 제목의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이 공안정국과 냉전을 부추기는 선동적 비판을 일삼고 있다”고 언론 행태를 비판했다.
언론단체는 이어 이번 간첩 사건 보도 행태를 ‘수구의 준동’이라고 규정하고 “이번 사건을 이용해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선동적인 정치공세를 펴는 것에 대해 단연코 반대한다”며 “반이성적 정치공세 앞에서 사상의 자유나 인권 등의 문제는 들어설 틈이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언론연대 이명순 공동대표는 “이번 사건은 대명천지에 다시 3공, 5공 군부독재로 회귀하려는 음모가 우리사회에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라며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은 군부독재부터 문민정부까지 수사기관 발표를 침소봉대해서 기사를 써 국민을 오도했고 그런 공적으로 정부의 특혜를 받은 수구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기자협회 정일용 회장은 “미국에서는 로버트 김을 간첩 혐의로 잡았는데 한국에서는 미국 간첩을 잡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한반도야 말로 주변 강국이 정보전·첩보전을 치열하게 벌이는 곳으로 많은 간첩들이 있는데 간첩은 모두 북한 간첩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과거 간첩 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됐던 사람들에 대한 판결과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는 간첩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무죄로 밝혀진 함주명씨와 가족들이 정부와 이근안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연대해 총 14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1965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됐던 재독동포 이수길 박사(78)도 6일 서울 프레스센터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무 죄가 없는 내가 정부의 잘못으로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이대혁 기자 daebal94@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