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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하대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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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대 소화기가 불을 못 끈다.’ 믿기 어려운 제보였다. 모든 소화기는 사전검사를 받고 필증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다. 업체 입장에서 불량품을 대량생산한다는 것은 무모한 모험 아닌가. 하지만 장난전화나 음해성 제보로 치부하기엔 제보자가 제시하는 정황이 너무 상세했다. 소화기 샘플검사 때마다 교묘한 ‘바꿔치기’로 불량품에 합격필증을 받아왔다는 증언이었다.
시중에 파는 청운소방 2.5㎏ 소화기 두 개를 사들고 소방검정공사를 찾아갔다. 소화기 공인 검사기관인데다 불을 꺼보는 ‘소화 실험’ 시설이 유일하게 갖춰진 곳이다. 바쁘다며 소화기 성능 실험을 극구 꺼리는 검정공사 직원들을 가까스로 설득했다.
첫 실험. 제보자 말대로 불이 꺼지기는커녕 소화기가 뿜는 공기압으로 불길이 더욱 커질 뿐이었다. 직원들은 소화기 작동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며 실험결과를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이번엔 청운소방 직영판매점에 직접 가, 가장 많이 쓰이는 3.5㎏ 소화기 세 대를 구입해 추가 실험을 해봤다. 결과는 마찬가지. 소화기는 전혀 불을 끄지 못했다. 정밀 성분 검사를 맡기고 며칠 뒤, 청운소방 소화기에 들어있는 약품의 실체가 드러났다. 불을 끄는 필수성분인 제1인산암모늄은 단 1g도 검출되지 않았다.
곧장 청운소방 공장을 찾아갔다. 시종일관 부인하던 사장은 실험결과를 제시하자 약품 조작 사실을 털어놨다.
정밀한 검사 체계를 자랑하던 검정공사 직원들이 그제야 검사 때마다 업체에 속을 수밖에 없다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화장실 간 사이, 사장과 커피 한잔 하는 사이, 언제든 샘플링 된 소화기를 미리 준비해 둔 정상 소화기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방방재청은 브리핑에서 소방검정 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약속했다.
이 지면을 빌려 취재에 큰 힘이 되어준 남승모 선배, 남주현 선배와 사건팀 선후배에게 감사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