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핵 실험 임박 2003년, 김정일 측근 망명설 1994년, 북한 장학금 교수 연행 1986년, 금강산댐 보도·김일성 피격사망
북한관련 대형 오보 사건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정확한 취재원 확보가 어려울뿐더러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는 취재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1백% 확신하며 쓸 수 있는 기사가 드문 실정이다. 또한 국내 언론은 대북 취재원이 사실상 국정원과 북한 출신 망명자, 외신에 한정돼 있는 실정이어서 대부분의 기자들은 북한 관련 기사는 “특종 아니면 오보”라고 말한다.
따라서 과거 북한 관련 뉴스를 되짚어 보면 추측과 왜곡보도 및 오보가 많이 양산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발생한 북한 핵실험설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의 인터넷에 실린 ‘북한 핵실험 임박’이라는 기사가 확대 재생산돼 조선, 동아, 중앙은 물론 한겨레, 경향도 핵실험이 임박했음을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한 달 동안 적게는 13~14꼭지에서 많게는 40꼭지에 달하는 기사를 관련 기사로 게재했다. 하지만 이는 해외 언론을 바탕으로 한 추측보도였고 오보로 밝혀졌다.
앞서 지난 2003년 5월 연합뉴스는 ‘김정일 측근 망명’이라는 기사를 통해 “북한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의 핵심 측근인 길재경 서기실부부장과 노동당 조직지도부 염기순 제1부부장의 차남 염진철이 최근 미국에 망명했다”고 보도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기사는 당시 석간과 지상파 방송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다음날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언론계에서 가장 큰 오보로 기억되는 것은 지난 1986년 중앙일보 10월30일자 1면에 보도된 ‘금강산 발전소 건설 중단하라’는 소위 ‘금강산댐 보도’와 같은 해 11월16일 조선일보가 보도한 ‘김일성 피격사망’이라는 보도였다.
금강산댐 보도는 당시 금강산댐의 저수 용량이 2백억 톤에 달해 댐이 파괴될 경우 강원도 일대는 물론 경기도 및 수도권까지 완전히 물에 잠기는 등 북측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발전소가 아닌 대남 적화를 위한 댐 건설이라는 보도였다. 이후 보도는 금강산댐에 대응하는 다른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평화의 댐’ 건설이라는 명분아래 군사 정권의 안보 논리를 추종하는 역할을 한 오보였다.
‘김일성 피격사망’ 보도는 당시 조선일보 도쿄 특파원이 일본에 떠돌던 김일성 암살 소문을 단신으로 처리한 것을 시작으로 점점 크게 확산된 경우다. 당시 ‘암살설’이 ‘피격암살’로 바뀌었고 조선은 12면 중 7개 면을 할애해 보도했다. 다른 언론에서도 김일성이 이미 사망한 것을 전제로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이틀 후 김일성이 TV를 통해 나타나자 세계 언론 역사상 가장 큰 오보 중에 하나로 인식됐다.
또 1994년 모 교수가 독일 유학생 시절 북한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안기부로 연행돼 조사 받는다는 ‘북한 장학금 교수 연행’ 보도도 연행된 교수가 하루만에 혐의 없음으로 풀려나 오보로 기록됐고, 향후 그 교수는 보도한 언론사 9개 전체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 외에도 ‘성혜림 망명(1996년 2월)’, ‘북한 탈북자 공개처형(2001년 3월)’, ‘남·북·중 정상회담한다(2002년 2월)’ 등 수많은 북한 관련 보도가 오보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