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기자 도려내고, 정론까지 도려내면 벼랑끝 설 것
불편부당 고수로 지켜온 신뢰도 이번 사태로 ‘산산조각’
“내가 시사저널 기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주길 “나를 징계하라!” 지난달 23일, 시사저널 사측이 백승기 사진팀장에게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자 기자들은 실명 벽보로 항의했다. 편집국에서 막내격인 기자들이었다. 한창 현장을 누비며 기자로서 희열을 느껴야 할 이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느덧 을씨년스런 가을바람이 파고들던 월요일 오전, 마감을 마치고 일주일을 준비하던 다섯명의 주니어 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원래는 시사저널 막내 기자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내 기자들이 어린 편이 아니라 놀랐다(모두 웃음). 시사저널은 나름대로 개성이 뚜렷한 매체라고 본다. 입사하기 전에 시사저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 신호철(신)=학생 시절 기숙사 생활할 때부터 정기구독을 했다. 지금도 그때 봤던 커버가 기억난다. 조각으로 만든 ‘악어와 악어새’ 표지였다. 김영삼 장학생이라고 불리는 기자들이 정략적 기사를 쓰는 세태를 고발했다. 그때부터 시사저널 입사가 꿈이었다.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시험을 다시 치러 대학(카이스트에서 서울대로)도 옮겼다. 대학 시절 서울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서울 가면 시사저널 꼭 가볼 거라고 하곤 했다. 회사까지 찾아왔는데, 그때 정문 앞에 서서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일이 기억난다.
-당시 시사저널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어땠나. 신=상식에 반하는, 거대한 거짓말들을 폭로하는 잡지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었던 것, 다른 언론에 나오지 않는 것. 그런 얘기를 지적해주는 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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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형석 기자(문화팀,2001년 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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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형석(차)=우리가 한참 언론사 시험 준비할 때가 조·중·동과 한겨레, 진보와 보수 언론 개념이 생기던 초반 시점이었다. 시사저널은 그 중에서도 중립적이고 불편부당하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 거리낌 없이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시사저널에 들어와서 자본과 권력 등의 입김으로 기사가 잘렸다던가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 기사를 쓰면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실릴 수 있을까 걱정했던 적도 없었다.
신=이번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해 우리가 과민하게 반응한다고 보는 기자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건 특수한 상황, 초유의 사태다. 이런 전제를 알아줘야 할 거 같다.
고재열(재열)=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초유지만, 풀어가는 방식도 초유다. 백번 양보해서, 편집인도 편집에 간여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아닌 밤중 홍두깨처럼 기사를 도려냈으면 최소한 미안한 빛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나. 그런데 처음부터 편집인으로서 권리만 주장하면서 기자들이 항의하는 움직임이 있으면 족족 다 징계를 내렸다. 항의 표시로 사표를 내면 곧바로 수리해버렸고, 조그만 움직임만 보여도 모두 징계하고….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은 시사저널 기자로서 자부심이 됐을 듯 하다. 주진우(주)=시사저널은 인력도 적고 가진 힘도 크지 않다. 그러나 불편부당한 입장을 지켰고, 성역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공정성과 신뢰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기사를 쓰는 데 절대 이권이라든가 힘의 논리가 개입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기자의 양심과 신념을 잣대로 해서 보도하는 데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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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진우 기자(사회팀,2002년 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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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사저널을 다른 매체와 절대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도 없다. 이렇게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는데 기자들의 신념을 송두리째 뽑아버린 거다. 기사가 경제 논리로 빠진다든가 하는 건 내 경험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몇 년 전에 한 재벌 기업에서 기사를 빼달라고 찾아 온 적이 있다. 그때 편집장은 이걸 미루거나 빼면 난 사표를 내야 한다. 내가 후배를 어떻게 보느냐고 거절했다. 기자가 데스크와 논의해서 나간다고 했으면 큰 문제가 없는 한 무조건 기사화되는 게 원칙이자 진리였다. 이게 총체적으로 깨졌다.
재열=시사저널은 초기에 조건이 상당히 좋았다. 투자자와 초기 멤버들의 의지가 결합해서 강소매체가 될 수 있었다. IMF 이후 경제적 토대가 흔들리면서 입지가 다소 약화됐지만 초기 멤버들 중심으로 권력과 자본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강소매체를 이 한국사회에 한번 만들어보자는 뜻은 계속돼 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그걸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6월16일 기사 삭제 사건을 처음 접하고 개인적인 심정은 어땠나. 고제규(제규)=당연히 충격이었다. 하지만 금창태 사장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지금까지 말을 자주 바꿔왔기 때문이다. 금 사장이 2003년 4월 부임했다. 그때 기자협회 지회가 조중동 출신 사장과 호흡이 맞을 수 있을까 우려를 나타냈다. 금 사장은 첫 만남에서 “걱정마라, 난 경영 잘하러 왔다. 편집에 전혀 간섭 않겠다”고 말했다. 그 뒤 8월에 우리 기자들 사이에 8·4사태라고 불리는 일이 벌어진다. 금 사장이 마감 날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정책에 대한 기사를 쓰라고 국장에게 직접 지시했다. 우리는 기사 가치가 없다, 시간 상 문제도 있다, 못쓰겠다고 하니까 명령이라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그 이후 워크숍에서 기자들이 편집권 문제를 또 물었다. 금 사장은 “편집인이니까 어떤 기사가 나가는지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기사 전체를 들어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뒤 말을 자주 바꾸는 과정을 보면서 신뢰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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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열 기자(정치팀,2000년 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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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열=난 초기에 사태를 아주 낙관했다. 시사저널 사상 초유의 일을 벌여놨으니 결국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일이 극단적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역주행하고 있기 때문에 끝에는 벼랑이 나오고 침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기사를 도려내고, 이제는 기자를 도려내고 있다. 그 다음엔 시사저널의 정론을 도려낼 것이다. 이미 여러 회사와 콘텐츠 계약을 맺고 있다. 세 번째, 정론까지 도려내려 한다면 벼랑에 마주칠 것이고 결국 순리대로 가리라고 본다. 그래서 난 지금도 낙관적이다.
-국장 사표를 수리하고 기자들을 징계하는 등 회사 측의 강경 대응을 예상은 했나. 제규=시사저널 역사상 징계가 이렇게까지, 그리고 빨리 이뤄진 적이 없었다. 또 백승기 사진팀장에게 자택대기 인사발령을 내린 것에 우리 주니어 기자들은 가장 분노했다. 징계를 넘어서 이건 구조조정까지 하겠다는 의도다. 회사가 모종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백 팀장은 예전에 회사가 부도 중이었을 때 마감 현장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 임종도 보지 못했던 선배다. 그래서 사람들이 직접 당한 것보다 더 분노했던 것이다.
-이렇게 어수선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취재활동이 어려울 것 같다. 재열=취재원들이 계속 물어본다. 취재 전에 시사저널 사태 브리핑 시간이 필요하다(웃음).
신=회사가 유능한 기자들을 밀어냈고 편집국에 접근조차 못하게 한다. 국장 내보내고, 팀장, 시니어급 기자 모두 징계하고…. 쉽게 말해 대통령, 총리, 장관 다 없애놓고 일하란 얘기다.
재열=노사 간 갈등이 일어나면 생산물, 상품의 질과 양을 평상시보다 떨어지게 하는 게 노조의 투쟁수단이다. 그런데 여기는 반대다. 기자들은 매체의 퀄리티를 걱정하는데 회사는 국장, 팀장, 부장, 시니어급 기자들을 모두 몰아냈다. 시사저널에 대해 어떤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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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제규 기자(정치팀,2000년 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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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규=취재 갔다 들어오면 회사 게시판 보기가 두렵다. 선배들 징계가 붙어있으니까. 의욕도, 힘도 빠진다. 독자를 생각하면 일정 퀄리티를 담보해야 하니까 최대한 뛰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선배들이 제작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 사태 이후 시사저널 질의 변화는 독자들이 가장 잘 알거라고 생각한다.
주니어 기자 입장에서 금창태 사장에 대해 또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과연 경영자로서는 어땠냐는 거다.
금 사장이 회사에 처음 왔을 때 경영 비전을 제시했다. 월급을 일정 이상 올려 놓겠다, 2015년까지 인포먼트 미디어를 만들 수 있도록 기반을 닦겠다, 직원들에게 약속했다.
그렇지만 지난 3년간 무엇을 했나. 주니어 기자들이 가장 참지 못하는 건 월급이 많고 적고 그런 문제가 아니다. 회사의 비전을 만들지 못하는 거다.
우리들은 회사 경영을 위한 아이디어도 많이 고민했다. 주간지로서는 시사저널이 처음 냈던 논술 부록 제작을 전담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탐탁치 않아하던 경영진이 그 뒤 한 경쟁 주간지가 논술 콘텐츠을 강화하니까 느닷없이 편집국장에게 왜 우린 이렇게 못하냐고 따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뒷북경영’인 셈이다. 그리고 금 사장은 항상 이념을 강조한다. 시사저널은 진보보다 중도로 옮겨가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요즘 어느 언론사 경영자가 이념을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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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철 기자(국제팀,2001년 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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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회사가 어려운 걸 기자들 탓, 성향으로 돌린다. 사장이 한번은 워크숍 때 “중도우파 잡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난 입사해서 한 번도 회의를 가져본 적 없었는데 그때 처음 느꼈다. 우린 좌파 잡지가 아니다. 시사저널의 이미지는 지식인 잡지, 중도적이라는 거다. 그리고 언론을 이데올로기로 만드는 게 아니지 않나.
제규=우리는 ‘팩트 신봉주의’라 할 만큼 훈련을 받았다.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 팩트면 쓰고 부족하면 취재 더하라고 훈련받았지 무슨 이념을 갖고 기사를 쓴다고 배우지 않았다. 그게 시사저널의 장점이기도 하고, 시사저널의 이념이라면 이념이다.
금 사장이 예전 워크숍에서 “기사 들어내는 일은 없다”고 공언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자신 주변 인물이나 조직을 취재 하려면 데스크도 거치지 않고 사장이 직접 취재기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 취재하기 전에 사장과 관계가 있는지 미리 알아봐야 되는 건가. 무의식적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주니어 기자들이 느끼는 비애감 중에 하나였다.
-사태 초기에 비해 언론계의 관심도 줄어들고 있다. 이런 갈등이 관성화되기도 했다. 회사 경영이 어려우면 기자들이 협조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여러분이 기자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재열=어떤 폭력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있다 치자. 남편은 “내 마누라 내가 때리는데 누가 뭐라고 해.” 주변에서는 “저 마누라 맞을 짓을 했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 기자들은 매 맞는 사람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핵심은 편집권이다. 지금 회사측은 “내 잡지에서 내가 기사 도려내는 데 누가 뭐라고 하느냐”는 태도에서 단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신문법에도 편집위원회 설치 조항이 있다. 여기서 후퇴하면 다른 편집인들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사초 편찬할 때 왕이 관여할 수 없도록 막는 여러 장치가 있었다. 우리 선조들의 전통에서도 편집권에 대한 개념이 바로 서있었다. 이번 사태는 이런 전통마저 말살하는 거다.
신=강준만 교수가 시사저널이 흑자 부도를 냈을 때 어떤 매체 칼럼에서 “한국사회가 시사저널 같은 잡지 하나 유지 못할 정도의 사회냐”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시사저널과 논조가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이라 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이런 특징적인 잡지 하나가 소멸될 위기에 있다면 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제규=시사저널 사태를 한 회사의 문제만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부 언론사에서는 이른바 ‘기사 엿 바꿔 먹기’도 하는데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물론 대기업 홍보팀이 해명하려 하는 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기사를 빼달라는 요구를 당연시하는 풍조는 분명 문제다. 이건 원칙의 차원이다. 단기적인 자구책은 될 거다. 하지만 장기적으론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잃는다. 언론계의 제 살 깎아먹기가 되는 것이다. 또 삭제된 기사를 쓴 이철현 선배가 이른바 붓이 꺾였을 때 느꼈을 모멸감은 어땠을까. 국장까지 OK했던 기사가 무단으로 잘렸을 때 가졌을 굴욕감을 한번쯤 헤아려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사저널 사태에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
차=우리 기자들이 기사를 거래하는 것에 너무 무뎌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 시사저널 기자들의 행동이 유별나 보일 수도 있다.
‘삼성의 언론 통제’라는 식으로 크게 보지 않아도 좋다. 다른 기자들에게 같은 일이 자기 회사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묻고 싶다. 어느 날 출근을 하니까 사장이 출고가 다 된 기사를 국장 모르게 인쇄소에서 뺐다. 이걸 문제제기하니까 너희가 잘못했다, 회사 망하게 한다며 비난하면서 징계를 내린다. 그렇다면 그 조직에 속한 기자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가. “사장님 힘내세요”라고 도열해서 박수 칠 수는 없지 않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 일에 관심이 있든 없든, 시사저널 기자들의 방향이 어떻다 지적하기 전에 이 같은 일을 겪는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를 말이다.